한국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술품들의 가격은 ‘호’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엽서 크기인 1호를 기준으로 크기에 비례해 미술품 가격을 산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미술품의 가치는 크기와 시대, 재질 등 객관적인 정보를 토대로 산출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미술품의 가치는 특정 사회와 문화 내 ‘미술품의 맥락화 과정’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미술품의 소비 문화에 관한 연구는 크게 두개로 구분할 수 있다. ▲미술품을 사는 소비활동이 어떻게 상품의 가치를 재창출하는지 ▲어떻게 특정 집단 내 구성원들간 관계를 정의하는지다. 미술품 소비 문화에 관한 연구 대다수는 직간접적으로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자본론(특히 ‘문화자본’)이라는 이론의 영향을 받았다.
부르디외의 ‘문화자본’의 개념은 ‘미술품의 문화적 가치가 특정 환경 내 경제 자본에 필적하는 것뿐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사회적 자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부르디외가 설정한 문화자본은 체화되고(embodied), 객관화되며(objectified),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형태로 나타난다. 앞의 두가지 형태는 각각 ‘애호와 취미’, ‘작품’으로 설명한다. 세번째인 제도화된 형태는 미술품에 관한 정보를 이론화, 체계화하고 공인된 기관을 통해 습득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얻는 ‘권위’로 설명한다.
문화자본도 특정 환경 아래 경제 자본화 된다는 부르디외의 주장은, 미술품을 둘러싼 다양한 행위와 가치관도 화폐적 가치로 전환하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교육을 근간으로 한 미학과 미술사학적 지식의 생산과 재생산은 미술작품의 가치와 연결될 수 있다.
서구 사회에서는 미학·미술사학이 일찍부터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미학·미술사학의 담론에서 다룬 미술품들의 경제적 가치가 담론으로 다루지 않은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월등함을 그간의 경험이 증명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등 유명 미술관은 미술품 가치평가를 규제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대학교(The Wallach Art Gallery at Columbia University), 프린스턴 대학교(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펜실베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Museum of Archaeology and Anthropology) 등 대학들도 미술품 가치 평가에 대한 규제를 받고 있다. 대학 및 미술관은 미학, 미술사학 연구를 하는 주요 기관이기에 시장과 학계 간 이해상충의 우려로 미술품 가치 평가를 규제 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학문(미학·미술사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의 시장가격이 더 높게 형성된다는 의견의 반증이라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사회에도 미술품 가치 평가 이론과 행위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서구사회와 달리 학문적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중국 명대 강남의 신사(紳士) 층이나 조선시대 경화세족(京華世族)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 취미 모임 형성, 서화(書畫) 이론의 공유와 서적 소비는 한 시대의 역사 · 문화적 현상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현재 한국의 미학과 미술사학은 방법론부터 이론을 설명하는 대표작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서구의 것을 그대로 차용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술품의 사회·문화적 가치가 형성되고,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는 데에 있어, 미학과 미술사학의 영향은 서구사회와 유사하면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구 사회에서 미술품 전시와 평론은 대형 미술관과 학술 기관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반면, 한국에서는 미술품 거래를 중개하는 화랑이 위 역할을 대부분 맡으며 권위까지 부여받았다. 또한, 시장과 학계간 이해상충의 우려가 있는 한국 대학 및 미술관에서조차 미술품 가치 평가에 대한 규제가 따로 없다.
많은 전문가는 크기에 비례해서 미술품의 가격을 정하는 호당가격제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 미술 시장에는 호당가격제를 빼면 미술품 가치 산정 기준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의 미술품 가치 평가 이론과 행위를 성숙하게 만드려면, 미술품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 외부필자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학교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 박사 취득 후 시드니공과대학교(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다.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 자문 활동 중이다.
박지혜는 아트파이낸스그룹(Art Finance Group) 대표다. 우베멘토 Art Finance 팀장 역임 후 스타트업 창업자가 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주관 <미술품 담보대출 보증 지원 사업 계획[안] 연구> 참여 및 아트펀드포럼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술시장과 경매회사(2020년 출간 예정)』 (공동집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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