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차기 일본 총리로 사실상 확정됐다. 총리 교체에 따라 일본이 1년간 이어온 대(對) 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완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스가 장관의 총리 취임 후 한일 관계가 전향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만류하거나 일부 정치인이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할 때 주의를 촉구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스가 장관이 아베 정권의 정책 계승 및 강화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일본이 강경 노선을 유지한다면 수출 규제에 따른 한국 반도체 기업의 공급 불확실성이 지속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일본 신임총리로 사실상 확정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조선일보 DB
일본 신임총리로 사실상 확정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조선일보 DB
일본 집권 자민당은 14일 도쿄도의 한 호텔에서 실시한 총재 선거에서 스가 장관을 차기 총재로 선출했다. 스가 장관은 16일 소집되는 임시 국회에서 정식으로 제99대 총리로 선출돼 스가 요시히데 내각을 공식 발족한다.

일본은 2019년 7월 한국 수출 반도체 관련 품목 3종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그해 8월에는 한국을 수출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우리 정부는 한국에 대한 수출이 규제로 불필요하게 지연되고 불확실성과 비용 등이 증가했다며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WTO 분쟁해결기구(DSB)는 일본 수출 제한 조치 분쟁에 대한 패널위원 구성 절차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소재의 공급선 다변화와 국산화에 등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년간 수출규제 3개 품목의 통관 수입실적을 분석한 결과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대일(對日) 수입 의존도가 각각 6%포인트, 33% 포인트 감소했다. 벨기에와 대만으로 수입처 다변화가 특징이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반도체·디스플레이와 관련된 소부장 모든 분야는 일본을 비롯한 해외 의존성이 여전히 높다"며 "국산화 대상과 품목의 우선순위를 검토해 기술 개발이 시급하고 시장 확장성이 높은 곳에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총리가 G20 정상회의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총리가 G20 정상회의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 / 청와대
하지만 일본 의존도는 여전히 높고, 국산화 측면에서 갈길이 멀다. EUV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국내에서 생산이 어렵다.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일본산 수입 비중이 줄었지만, 대부분은 우회 수입하고 있어 성과로 보기 어렵다.

양국의 갈등이 장기화 하면 우리 기업은 공급 리스크를 지속 안고갈 수밖에 없다. WTO 제소로 이어져 갈등을 단기간 해소하기 힘든 점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스가 장관은 최근 일본 매체를 통해 한일갈등의 원인이 된 강제징용 배상판결과 관련해서 아베 정권의 입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6일 보도된 산케이신문과 7일자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한일관계를 묻는 질문에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이 한일관계의 기본이다"라며 "(한국의) 국제법 위반에 철저히 대응해가겠다"고 답변했다. 강제징용 피해배상 판결에 대한 기존 아베 정부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스가 장관은 12일 일본기자클럽 주최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도 "외교는 지속성이 중요하다"며 "(아베 총리와) 상담하면서 가겠다"는 발언도 했다. 사실상 ‘아베 정권 시즌 2’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스가 정권이 취임을 계기로 한국과 기존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유연한 자세를 보일 것이란 기대섞인 전망도 나온다. 수출 규제로 피해를 본 자국 기업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복수의 일본 언론은 최근 새 내각 출범에 앞서 수출규제 등 일본 기업도 피해를 보는 상황을 바삐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스가 시대 개막으로 일본의 태도나 입장이 바뀔 것으로 기대할만한 근거는 적지만, 코로나19와 역사 문제로 일본 기업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한일 관계의 개선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