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업계 위기론, 다양·독창성 되찾아야

입력 2020.09.16 16:20

"한국 게임 업계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타이틀에 갇혀 뒤편의 어두운 그림자를 스스로 외면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석환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사업실장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15일~19일 개최하는 ‘2020 콘텐츠산업포럼’ 첫날에 열린 ‘게임 포럼’에서 말했다.

전석환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사업실장이 강연하는 모습 /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 게임 업계의 빛나는 면 뒤에는 어두운 면 있어
인기 게임 순위 100위 안에 한국 게임은 17개 뿐

그는 한국 게임 업계의 명(明)과 암(暗)을 짚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게임 현황과 ‘잘 모르는’ 현황이 있다는 것이다.

콘진원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게임 시장 규모는 14조원이다. 매년 성장한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6.3%다. 2018년 한국의 산업 무역수지 흑자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8.8%, 전체 콘텐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7.2%(103억9000만달러 중 69억8183만달러)에 달한다. 전 실장에 따르면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 게임의 현황이자 게임 업계의 밝은 면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많다. 전 실장이 직접 집계한 결과, 9월초 구글 플레이스토어 인기 상위 100개 게임 중 국산 게임은 고작 17개에 불과했다. 중국계 게임은 38개, 미국·유럽산 게임이 21개였다. 2017년에는 한국 게임이 55개였는데 2020년에는 70%쯤 감소하고, 중국계 게임은 13개였는데 같은 기간 3배쯤 늘어난 셈이다.

심지어 한국 게임 중에서도 넥슨, 웹젠, 컴투스 등 기존에 이름을 알렸던 중·대형 게임사 작품을 제외하면 신규·소규모 기업 게임은 7개에 불과했다.

전 실장은 "협회가 게임 개발사 170개를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한 개발사 중 56%가 구성원 5인 이하의 소형 개발사였고, 42%는 설립한 지 2년이 안 된 신생 기업이었다"며 "이는 기존 중소게임사가 몰락해 그 규모가 급속도로 줄어드는 ‘파편화’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앱애니가 발표한 양대 마켓 매출 기준 2020년 상위 52위 퍼블리셔, 10위 안에 든 한국 게임사는 넷마블(6위)이 유일하다. / 앱애니
주로 내수 시장에서 선전하는 한국 게임
‘집토끼’ 젊은 이용자 점점 국산 모바일게임 외면

장밋빛 미래를 점치기도 어렵다. 한국 게임은 주로 내수 시장에서 매출을 내는 상황이다. 실제로 모바일 앱 조사업체 앱애니 2020년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구글 플레이스토어, 애플 앱스토어 세계 수익을 기준으로 매기는 퍼블리셔 순위에서 10위 안에는 6위를 차지한 넷마블밖에 없었다. 1, 2위는 중국 거대 기업인 텐센트, 넷이즈가, 3위는 미국 게임 기업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차지했다.

한국 게임 이용률(게임 이용자 수 비율)도 2015년 74.5%에서 2019년 65.7%로 줄었다.
2020년(5월)은 코로나19 확산으로 게임 이용률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으나, 30대 모바일게임 이용률이 8.9% 줄어드는 등 젊은 게이머가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 실장은 "이른바 ‘양산형 게임’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 탓에 젊은 게이머의 한국 게임 이용률이 낮아지는 상황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미투게임 만들기보다 유행 이끄는 독창성을 확보해야
한국은 온라인·멀티플레이에 강한 나라…강점 살려야

그는 ‘게임 종주국’으로 불리던 한국 게임 시장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이유를 4가지 제시했다.

▲게임 시장이 PC 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할 때 대응이 미흡했고 ▲‘된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가서 만드는 ‘양산형 게임’이 쏟아지고 ▲과한, 천장 없는 무한과금을 유도하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20·30대 이용자가 게임 안에서도 공정한 기회를 잃고 있으며 ▲시장에 신선함을 불어넣어야 하는 인디게임조차 포화상태로 벤치마킹, 베끼기에 열중하는 상황이 한국 게임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전 실장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게임을 좋아하는 모바일게임 이용자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미투게임을 개발하기보다는 게임 유행을 이끄는 독창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대형 게임사부터 건전한 BM을 개발해 한국 게임을 외면하는 ‘집토끼’ 게이머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석환 실장은 한국 게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온라인·멀티플레이 환경을 지원하는 다양한 방식의 독창적인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PC게임 시절부터 멀티·온라인게임 개발에 집중해 개발, 운영 역량이 뛰어나고, 모바일 인프라를 최고 수준으로 갖췄다"며 "놀이터에 놀이기구뿐 아니라 함께 놀 친구가 있어 방문하는 것처럼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 세대에게 ‘함께하는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실장은 또한 게임 외 콘텐츠 분야가 함께 발전하는 것이 게임 산업 발전에도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 한국 PC 온라인게임 시절에는 리니지, 바람의나라, 라그나로크, 열혈강호 등 한국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만든 게임이 대부분이었다"며 "최근에는 마땅히 활용할 IP가 없어 해외 것을 찾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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