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한국자생식물원이 무려 8년 만에 재개원했다는 소식입니다.

외래종과 원예종이 범람하는 시대에 한국자생식물원은 우리 고유의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식물원이었습니다. 산림청 지정 사립 식물원 1호이기도 한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12년에 문 닫은 상황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2011년의 화재의 후유증으로 인한 긴 휴관이라고는 하지만 재정적인 문제가 겹쳐진 ‘폐관 같은 휴관’이어서 사립식물원이 마주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생식물로 꾸며진 식물원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저희 같은 사람들은 한국자생식물원이 언제쯤 다시 개원할까 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한국자생식물원의 홈페이지를 몇 번이고 클릭해서 들어가 보았지만, 곧 재개원할 거라는 안내문이 떴다가도 다시 사라지면서 한번 닫힌 홈페이지의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습니다.

재개원에 대한 갈망이 워낙 컸기에 아직 재개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입구까지 가보았다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르르 잊었는데 3년여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2020년 6월 6일에 새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했습니다. 손꼽아온 재개원이었기에 벼르고 벼르다 시간을 내서 찾아갔습니다.

재개장한 한국자생식물원 입구
재개장한 한국자생식물원 입구
한 차례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라 그런지 분위기는 아직도 재개원 준비 중인 것처럼 좀 어수선했습니다. 입장 준비를 하는 동안 누런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에 나와 앉아 ‘일찍도 왔네’ 하고 맞이해 줍니다. 블로거들이 올리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그 스타 고양이구나 싶었습니다. ‘보아 하니 처음은 아니구만, 따라 들어오시게’ 하듯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벌러덩 드러누워 애교를 부립니다. ‘얼마 전에 유혈목이로 보이는 뱀을 잡았다고 하기에 식물원 고양이 3년 됐나요’ 하고 물었더니 ‘11년이나 됐다’고 답합니다. 한국자생식물원이 문 닫기 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2011년의 화마도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고 물으니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몸을 뒤집습니다.

11년이나 됐고 뱀도 잡는다는 베테랑 고양이
11년이나 됐고 뱀도 잡는다는 베테랑 고양이
하필 코로나 시대에 재개원하는 바람에 손님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하루 평균 100명 내외의 관람객이 발걸음을 해준다고 합니다. 여타 식물원의 화려한 원예품종이나 외래 도입종의 같은 것을 기대한 분들은 투덜거리기도 한답니다. 대단위로 심은 군락을 보고 그 속에서 사진 찍고 싶어하는 분들은 그렇게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생식물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은 분들이 찾는다면 절대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한국자생식물원은 그래서 여타 식물원과 다르고, 대한민국 땅에 존립해야 할 이유가 그 어느 식물원보다 확실한 식물원입니다.

어떻게 하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여쭈니 많이 찾아오면 된다고 합니다. 북카페 ‘비안’에 마련된 카페에서 커피라도 팔아줘야겠다 싶었는데, 한 잔에 겨우 3000원이랍니다. 입장료 5000원도 너무 싸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미안한데 말입니다. 관람료만으로 수익이 나느냐는 질문에는 수익은 나지 않는다는 웃음기 어린 답변이 돌아옵니다.

기증 도서로 꾸며진 북카페 비안은 널찍한 독서 공간입니다. 식물원 내에 도서관이 운영되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격 높은 ‘힐링의 장’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설치해 운영하는 곳이랍니다.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시간을 다 보내고 가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아늑한 곳입니다. 제대로 된 쉼의 공간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북카페 ‘비안’에 꾸며진 도서관
북카페 ‘비안’에 꾸며진 도서관
한쪽 구석에는 숲속판매장이 있습니다. 우리 꽃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을 구경하고 구입도 가능합니다. 도자기 그림그리기나 압화 부채 만들기 등의 체험 행사를 진행한다고 하니 배우면서 직접 만들어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습니다.


야외로 가는 길에 만나는 쉴 공간
야외로 가는 길에 만나는 쉴 공간
동선을 따라 유리 온실을 거쳐 야외로 나가 보았습니다. 한국자생식물원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희귀멸종위기식물원‧특산식물원입니다. 이곳에서 8년 전에 만났던 식물들이 묵은 얼굴 곱게 씻고 맞이합니다. 참두메부추, 큰제비고깔, 절굿대, 벌개미취, 좁은잎해란초, 제비동자꽃 등등이 많은 벌과 나비를 끌어모으는 중이었습니다. 꽃이 많은 만큼 많은 곤충이 날아와 붐빕니다. 곤충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숲이 이렇게나 활기차고 분주한 곳이었던가 하고 놀라게 됩니다. 덩달아 카메라 셔터도 분주히 눌러집니다.

희귀멸종위기식물원‧특산식물원
희귀멸종위기식물원‧특산식물원
참두메부추
참두메부추
큰제비고깔
큰제비고깔
벌개미취
벌개미취
산수국으로 덮였던 생태식물원은 더욱 풍성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사이사이에 학술적으로 보호해야 할 귀한 식물들이 속속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유리 온실이었던 수생식물원은 완전히 개방해 야생상으로 돌려놓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식물원이 좀 더 자연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상설전시장인 솔바람갤러리는 우리꽃 그림전, 우리꽃 사진전, 새집 전시 등 우리꽃과 관련된 전시회를 감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현재는 안진의 교수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야생화 사진을 전시하곤 했던 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저의 집에서 남아도는 야생화 사진을 기증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습니다.

생태식물원
생태식물원
유리 온실이었다가 개방된 옛 수생식물원
유리 온실이었다가 개방된 옛 수생식물원
솔바람갤러리 내부 모습
솔바람갤러리 내부 모습
홈페이지 안내 대로 벌개미취분홍바늘꽃 군락지는 사라졌습니다. 그 좋던 꽃창포 군락지도 이제 사진으로나 남게 됐습니다. 아쉽지 않은 건 아니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다면 충분히 다시 옛 시절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추억이 된 분홍바늘꽃 군락 모습(2012년 6월 29일)
추억이 된 분홍바늘꽃 군락 모습(2012년 6월 29일)
사진으로 남은 꽃창포 군락 모습(2012년 6월 29일)
사진으로 남은 꽃창포 군락 모습(2012년 6월 29일)
한국자생식물원의 재개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식물은 자생하건만 사립 식물원이 자생하기 어려운 이 현실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당당하게 우리의 식물을 지켜내는 일에는 관심 갖지도 못하면서 왜 우리는 시시때때로 식물주권을 외치는 걸까요? 재정적인 뒷받침 없이 존립하기 어려운 사정이 사립 수목원만의 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사실을 한국자생식물원이 문 닫고 있는 동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잃어봐야 소중함을 아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우리의 것을 지켜가기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는 못할망정 찬물을 끼얹지는 말아야겠습니다. 한국자생식물원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자생식물원 전시원 내 조형물
한국자생식물원 전시원 내 조형물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 freebowl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