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의료가 주목받는 가운데 혁신을 내세운 서비스가 불법성 논란에 부딪혀 결국 문을 닫았다. 주인공은 의약품 안전 배송 서비스다. 신구(新舊) 산업 간 갈등의 한 가운데에 섰다. 의약계의 타다 꼴이 됐다. 한쪽에서는 규제자유특구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까지 수상하며 혁신의 아이콘이 됐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압박과 구 사업에 유리한 유권 해석을 내려 결국 사업을 중단케 했다. IT조선은 신구산업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 독자들에게 의견을 묻고자 한다. [편집자주]

① 의약품 배달 서비스, 불법인가 혁신인가
"불법 아니다"
"혁신 잣대 들이대면 보건의료시스템 무너진다"

 / Eastern Online Pharmacy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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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중소벤처기업부는 규제자유특구 아이디어 공모전 대상에 ‘의약품 안전배송 솔루션’을 선정하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을 수여했다. 해당 솔루션은 의약품 조제부터 배송, 복약지도까지의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시스템이다.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해당 공모전은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 7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정책 이해도와 완성도, 규제의 명확성과 참신성, 실현 가능성과 기대효과, 지역균형 발전 기여도 등을 기준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의약품 안전배송 솔루션은 규제 특례 명확성, 기대 효과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같은 소식에 약사회가 반발의 목소리를 높였다. 구로구 약사회는 9월 11일 성명을 내고 "중소벤처기업부는 자신의 분야도 아닌 보건의료 정책과 제도에 관여하지 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바란다"며 다소 수위가 높은 발언을 했다.

이들은 또 "참여한 전문가는 누구며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의약품안전성 문제 대책도 함께 준비됐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중기부의 이번 대상 선정은 최근 4차산업혁명이라는 미명 아래 국민 삶에서 중요한 보건과 건강을 돈벌이 삼아 상식과 원칙을 무너뜨리는 정부부처의 방향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에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부가 직접 사업을 추진하는 건 아니고 지자체가 관심을 보이면 과제 기획자와 전문가 등을 매칭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며 "상을 받았다고 해서 과제가 바로 정책으로 추진되는 건 아니다"라며 한발 물러섰다.

규제자유특구 아이디어 공모전 결선 진출 사업 / 중소벤처기업부
규제자유특구 아이디어 공모전 결선 진출 사업 / 중소벤처기업부
혁신과 불법의 갈림길에선 의약품 배송 서비스

약사회가 중기부에 비난 수위를 높인 것은 약 배송 서비스 업체 등장으로 약사 사회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중기부가 비슷한 서비스를 대상으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약사회는 현행법을 근거로 의약품 배송이 불법이라고 말한다. 약사법 제50조 1항에는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날인 8일, 스타트업 닥터가이드가 3월 선보였던 배달약국이 서비스 중단을 결정한 배경이다. 약사단체 압박과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보건소의 의견에 서비스를 멈추고 보건복지부의 명확한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

배달약국은 환자와 30분 거리에 있는 약국에서 의약품을 대리 수령·전달하는 배송 플랫폼이다. 의료기관이 발급한 처방전을 환자가 가까운 약국으로 전송하면, 이를 받은 약사가 환자에게 전화와 서면으로 복약지도를 한다. 이후 배송 서비스를 통해 의약품이 환자 집으로 전달된다.

닥터가이드는 복지부가 지난 2월 한시적으로 전화 처방을 허용한 것을 근거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복지부와 보건소로부터 환자가 의약품을 대리인을 통해 배송받는 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는 답변도 받았다. 혁신성을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와 구글코리아가 진행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창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KOTRA 글로벌점프 300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약사 단체가 반발하자 복지부는 사안을 재검토하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약국개설자 및 의약품판매업자는 그 약국 또는 점포 이외의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약사법을 근거로 의약품 배송 서비스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경기도약사회 역시 3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복지부가 발표한 공고에 의하면, 전화 상담·처방은 의사에 의한 진료와 처방에 대해서만 한시적으로 허용됐다"며 "조제약국의 의약품 배송 서비스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한시적 공고가 약사법 위반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경기도약사회는 "환자의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은 안전성이 최우선이다"라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약국 내에서 약사를 대면하고 판매·전달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입법 취지에 반하는 의약품의 배송행위는 엄연한 불법이고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아쉬움 남는 스타트업…"약국과 상생 노렸는데"

혁신 서비스를 내놓은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의약품 배송 서비스는 약국과 상생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약을 안전하고 빠르게 배송하면서 약국 서비스를 선진화한다는 구상이다. 대형 약국에 소비자가 몰리는 현상을 개선해 동네 약국을 활성화할 수도 있다.

중기부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기획자 이 모 씨는 기존 시장과 이해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소외 계층에 서비스를 시작한 뒤 단계적으로 시장을 확대한다는 방안을 냈다. 앱을 통한 일대일 복약지도, 의약품 리베이트 개선 등 중소형동네 약국과의 상생 방안도 내놨다.

의약품 배송 플랫폼 ‘배달약국’을 운영하는 장지호 닥터가이드 대표도 "코로나19로 약국 방문자가 줄어든 가운데 이를 도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면서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실제로 대구에서 서비스해보니 약사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장 대표는 "현재 보건복지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며 "정부가 배달약국처럼 새로운 플랫폼과 약사 단체가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아마존, 우버도 뛰어든 의약품 배송 사업…한국은 언제쯤

스타트업 업계는 이처럼 정부가 혁신 서비스로 인정한 사업이 규제에 가로막힌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의약품 배송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한 만큼 갈등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미국과 중국 등에선 의약품 배송 서비스가 활성화된 상태다.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2018년 온라인 약국 업체 필팩을 인수해 의약품 배송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차량 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버도 자회사 우버 헬스를 통해 관련 스타트업 님블알엑스와 손잡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스타트업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에선 의약품 배송 서비스가 이미 활발하다"며 "한국 시장도 잠재력이 크지만 규제가 많아서 도전하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이언 규제개혁 당당하게 대표활동가는 "현행법에 맞지 않으면 고치면 된다"며 "코로나19 사태로 원격 의료가 시행됐지만 동네 약국에 전문 의약품이 없어서 처방전 들고 대학병원 근처로 가는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기 때문에 해결은 쉽지 않다"며 "우선 단계적으로 대형 병원 약국에서 의약품을 패키징해 동네 약국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 장미 기자 mem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