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는 대표적인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꼽습니다. IT조선은 ‘레고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덕업일치를 이룬 한국 대표 작가를 비롯해 10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레고 브릭의 매력과 창의력, 작품 활동에 필요한 요소를 풀어 냅니다. [편집자주]

레고로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내는 이가 있다. ‘진케이(Jin Kei)’ 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학진 작가다.

김학진 작가는 2017년 태국에서 ‘방탄소년단’의 모습을 레고로 그려내 현지 K팝 팬들의 시선을 잡았다. 2019년 12월, 청와대에서 그는 레고로 백범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그려내 문재인 대통령의 격려를 끌어냈다. 인체의 아름다운 곡선을 레고로 표현한 ‘다이브'란 작품은 보는 이를 작품 속으로 끌어 당기기 충분하다.

장난감으로 평가받는 레고가 그의 손을 거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재창조(ReBuild) 된 것이다.

’진케이' 김학진 작가. / IT조선
’진케이' 김학진 작가. / IT조선
건축학을 전공했고, 우연히 만든 게임이 성공하면서 무려 14년이라는 게임업계 경력도 갖췄다. 그가 ‘레고 아티스트’로 변신한 것은 2014년, 예술의 전당 전시에 작품을 내놓으면서부터다. 김 작가는 당시 전시 주제인 SF에 맞춰 스팀펑크 스타일의 ‘코끼리'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게임 제작자 김학진을 레고 아티스트의 길로 인도한 SF 사이버펑크 스타일 작품 ‘코끼리’. / IT조선
게임 제작자 김학진을 레고 아티스트의 길로 인도한 SF 사이버펑크 스타일 작품 ‘코끼리’. / IT조선
김학진 작가는 ‘전업’ 레고 아티스트다. 레고로 작품활동을 해 집안 경제 기둥을 지탱한다. 레고와 무관한 직업을 가진채 활동하는 레고 작가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레고 창작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소위 잘 나가는 직장을 그만둔 김 작가에게도 주변의 걱정스런 시선은 존재했다. 김학진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따라오는 ‘장난감’이라는 고정된 인식 속에서 ‘그걸로 뭘 어떻게 하려고?’ 라는 주변의 반응과 걱정 어린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많이 받았다"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레고를 장난감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고정된 시각'이 오히려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그는 "제한된 사고의 경계를 넘어 레고 브릭이라는 속성을 드러내면서도 대다수의 관객이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정도로 제 생각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나의 작가 행보는 여전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학진 작가는 코로나19 여파로 어려운 시기 속에서도 작품활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김 작가는 최근 패션잡지 보그(Vogue)의 ‘블랙핑크 제니' 패션화보에 등장한 브릭아트를 만들었다. 레고 작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제니 화보에 등장한 김 작가의 레고 브릭아트 작품은 레고그룹 본사 마케팅 관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학진 작가는 "올해는 여러모로 원활하지 않은 시기지만 개인 작품은 항상 꾸준히 작업 중이다"며 "작품의 스케일이나 형태에 따라 부품을 꺼내, 바로 만들기도 하고 PC앱을 이용해 작업을 하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브릭아트 ‘백범 김구'를 설명하는 김학진 작가.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에게 브릭아트 ‘백범 김구'를 설명하는 김학진 작가. / 청와대
김 작가는 2019년 12월,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아 전시한 자신의 브릭아트 작품 ‘백범 김구'를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김학진 작가는 "대통령께 작품을 직접 설명 드렸던 일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진 케이’ 김학진 작가는 ‘창의’라는 척도를 정량화해서 정도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고 설명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인간은 "항상 사고의 덮개를 열어 놓는 입장에서 창의적인 방향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정의했다. 김 작가는 "세상에는 생각이 닫힌 사람들이 꽤 많다"며 작가 자신은 "생각이 열려있는 편에 서 있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김학진 작가에게는 아들이 있다. ‘창의력을 끌어 올리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묻자 김 작가는 "아들에게도 종종 건내는 말이기도 한데, ‘말랑한 생각, 단단한 행동’이라고 압축해서 표현한다"고 답했다.

그는 "현상·이슈·감정들을 기존의 틀에서 해체 해보고 다각도로 돌려보며 나만의 조합을 찾는 습관이 중요하다"며 "여기까지는 개인적인 망상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진짜는 그것을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는데 있다. 그렇게 나의 분신같은 것을 만들어 보여주면서 주변과 소통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작품’이라고 불러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작품 영감을 얻는 노하우에 대해 김학진 작가는 "중요한 것은 특별함보다 꾸준함이다"며 "그때 그때 생활하면서 순간순간 들어오는 작품화의 연결고리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하고, 가끔씩 꺼내보면서 되새긴다. 작품 구체화에 대한 마음에 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때 실제 작업을 진행한다"라고 밝혔다.

자라나는 어린이를 위해 김 작가는 "어린이 여러분 상상하세요. 그리세요. 만드세요. 만들었으면 그걸로 다시 상상하면서 신나게 놀아요. 생각에도 뚜껑이 있어요. 닫지 말고 항상 열어두는 것 잊지 마세요"라고 조언했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레고 브릭으로 표현한 작품 ‘다이브'. / IT조선
인체의 아름다움을 레고 브릭으로 표현한 작품 ‘다이브'. / IT조선
레고 작가를 꿈 꾸는 청년들에게 김 작가는 "나 또한 과정 중에 있어서 특별히 정리된 조언은 없다. 있어도 정답일 수가 없다. 다만 내가 평생의 일로서 마음먹고 들어서던 때를 생각해보면 왜 이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대답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진케이 김학진 작가는 "윤오영 작,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1976년에 발표된 수필집의 제목처럼 한걸음씩 내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과 교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레고 쌓는 노인’이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이자 꿈이다"라고 밝혔다.

레고그룹은 놀이를 통해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이끌자는 취지의 ‘리빌드 더 월드(Rebuild The World)’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진케이' 김학진 작가가 말하는 창의력의 원동력인 ‘열린 생각,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는 단단한 행동’은 비단 레고 작가로서만이 아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어린이에게 정말 필요한 한 마디가 아닐까 생각된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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