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뭘 더 하겠어요. 해외를 알아봐야 겠어요. 씁쓸하네요. 한국에서 태어나 사업을 해보겠다는데 안돼 해외로 내몰리는 꼴이니…"

3년째 한국서 가상자산 사업을 이어온 업계 대표의 말이다. 한국 사업을 정리하고 해외 라이선스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다. 한국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고민이 많다. 한국에 거주하면서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꽉 막힌 규제 여파가 ‘가상자산 스타트업 엑소더스(Exodus)’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모양새다. 몇 년 전 제조 산업을 중심으로 불던 탈한국 바람이 디지털 신산업으로 떠오른 가상자산 산업에도 불고 있다. 가상자산 투기 현상을 막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2017년부터 내놓은 고강도 규제 때문이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되 가상자산은 막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이 2000개 이상의 블록체인·가상자산 특허를 내고 중국이 그 뒤를 따라잡는 동안 우리나라는 특허 전쟁에서 밀려났다. 실물 산업도 마찬가지다. 2016년부터 가상자산 법제화 논의에 들어가 대기업의 가상자산 산업 진출 기반을 닦은 일본은 가상자산으로 ‘현금 없는 사회’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고강도 규제에 묶여 해외 자금을 끌어올 수 있는 가상자산 파생상품 등을 기획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나마 가상자산 산업을 최초로 규제하는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는 점에서 기대를 하는 곳도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산업 진흥 목적보다는 범죄 예방을 위해 마련된 법이기 때문이다. 업계 중론은 가상자산 사업자 입장에선 ‘막는 규제’나 다름없다고 한다.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현 상황을 "제국주의로 세계를 지배해 본 국가는 신속하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를 주도하는 길이 ‘혁신 장려’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우물 안에서 완장을 차고 질서를 잡는 쪽을 택했다"고 진단한다. 기술력이나 인재 면에서 뒤처질 것이 없는 국가임에도 정부의 ‘의지’ 하나로 산업 경쟁력이 밀렸다는 평가다.

결국 가상자산 사업을 하는 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셈이다. 이들이 눈을 돌리는 곳은 대부분 가상자산 법규가 체계적으로 마련된 국가다.

선두는 이미 놓쳤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전략을 생각할 때다. 자원도 없는 국가에서 인재와 스타트업 마저 유출된다면 국가 손실은 클 수 밖에 없다.

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사업자들이 숨 쉴 수 있는 명확한 제도와 방침이 절실하다. 규제 역시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가상자산의 부정적인 면만 보지 말고 해외 주요국이 토큰 종류에 따라 제도적 접근을 깊이있게 취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미래금융에서 가상자산의 역할이 어떻게 될지 등을 따져보는 트인 시선이 필요하다.

지금이라도 ‘가상자산 스타트업 엑소더스’를 막기 위해 정부는 가상자산 산업을 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또 하나의 먹거리인 가상자산 산업이 한국서 뿌리채 뽑힐 것이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