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재'란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다.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도 수요가 쉽게 변동하지 않는다. 소득의 높낮음과 관계없이 필요한 제품·서비스이므로 대개 정부가 관리한다. 전기·가스 등이 대표적인 필수재의 예다. ‘통신'의 경우 필수재적 성격을 갖지만 엄밀히 말해 필수재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마치 필수재를 다루듯 통신 서비스 기업을 규제한다.

정부의 통신 시장 개입은 어느 분야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최근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통신비 2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온라인 수업 관련 데이터 요금 무과금(제로레이팅)은 비대면 학습이 필요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통신비 2만원 지원은 국민이 꼭 원했던 혜택이었을까. 추경을 편성해 돈을 주는 정부지만, 역풍이 만만치 않다. 이통사 역시 정부의 지원 정책이 달갑지는 않지만, 속된 말로 까라면 까야 하는 처지다.

여야는 통신비 2만원 지원 정책의 실효성 문제가 불거진 후 대상을 한 차례 수정했다. 애초 13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지원해주기로 했던 것에 연령 제한을 뒀다. 새로운 대상은 16~34세와 65세 이상 국민이다. 여야 합의 후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통신비 지원을 못 받는 35~64세는 대부분 세금을 많이 내는 연령층인데 지원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지원받는 대상자들 역시 무제한 요금제를 쓰거나 최근 코로나19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보니 와이파이로 데이터를 충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통신비 2만원이 지원이 꼭 필요한 지에 의구심을 갖는다. 차라리 통신비를 내기 어려운 취약계층만 지원한다면 못마땅할지언정 반대 목소리가 이렇게 거세진 않았을 것이다.

통신비 2만원 지원책은 전형적인 불통(不通)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통신비 지원 대상을 청년기본법상 청년(17∼34세)과 노인복지법상 노인(65세 이상)으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에서 수혜계층을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했다.

기재부 역시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는데, 정부가 억지로 사업을 추진하다보니 문제가 확산됐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여기저기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옴에도 불구하고 귀를 닫았다.

통신비 2만원 지원이 추경의 수혜 계층을 최대한 넓히기 위한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작은 위로는 맞다. 2만원 통신비 지원은 솔직히 안 받아도 큰 타격감이 없는 적은 액수다. 하지만 정성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고작 한달치 통신비 2만원 지원을 위해 임시로 설치한 센터에 1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쓴다는 것부터가 ‘정성'이라기 보다는 ‘낭비'에 가깝다.

최근 4차 추경안 처리 과정에서 한 정부부처 관계자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는 "원래 기재부는 장·차관이 하라고 해서 하지도 않고, 당에서 하라고 해도 하지 않으며 오직 실무자들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부처다"며 "그렇지 않으면 세금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인데, 최근 기재부마저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공감이 됐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과도한 빚은 결국 국민들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제2의 코로나가 터지면 그때도 이렇게 퍼주기 정책을 할 수 있을까. 이번 추경에 통신비 2만원을 욱여넣은 것이 정말 국민들을 위한 결정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월급쟁이들은 힘들게 번 돈 중 수십만원씩을 매달 근로소득세로 낸다. 월급명세서를 받아들 때마다 ‘살점’이 뜯기는 기분이라는 이도 있다. 근로자 고통의 산물인 세금이 국민의 내적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곳에 제대로 쓰이길 바란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