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끝판왕] ④레고를 미술품으로 변신시키는 작가 '김승유'

입력 2020.09.25 06:00

레고는 대표적인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꼽습니다. IT조선은 ‘레고 끝판왕’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덕업일치를 이룬 한국 대표 작가를 비롯해 10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레고 브릭의 매력과 창의력, 작품 활동에 필요한 요소를 풀어 냅니다. [편집자주]

‘반트(Vant)’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승유(35) 작가는 레고 브릭을 하나의 미술품으로 바꾸는(ReBuild) 재능과 솜씨를 가졌다. 10만개 레고 브릭으로 만든 거대한 동백꽃 작품은 아모레퍼시픽 공식 행사에 활용됐다. 2019년 브릭코리아 전시회에 선보인 ‘고흐의 해바라기'는 사실주의적인 연출로 보는 이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반트' 김승유 레고 아티스트. / IT조선
레고 창작자 7년 경력을 갖춘 김승유 작가는 레고 작품 전시회 브릭코리아 운영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작가명 ‘반트'에 담긴 의미대로 ‘바라는 것'의 근본을 찾아가는 여정을 작품으로 담아내고 있다.

김 작가도 다른 레고 창작자와 마찬가지로 어린시절 레고에 대한 추억이 현재의 작가 길을 걷게한 원동력이 됐다. 추억에 대한 설렘으로 시작한 레고 창작이 커뮤니티 활동으로 이어지고, 커뮤니티 구성원의 관심과 응원이 산업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있는 김승유를 레고 아티스트로 변신시켰다.

작가가 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김 작가에 따르면 ‘다 큰 어린이 장난감으로 뭘하나’ 등 주변에서 많은 부정적인 비판이 이어졌다. 작가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벗겨내기 위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레고는 분명 장난감이지만 어른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더 나아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김승유 작가 레고 작품 ‘고흐의 해바라기'. / IT조선
김승유 작가는 ‘창의적인 영감'의 근원이 "무의식(냉장고)에 저장된 기억(재료)의 융합(요리)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경험하려 한다. 제품·영상·음악·패션 등 레고와는 관련 없는 다채로운 분야 소식을 보고 듣고, 시간이 나면 낯선 곳으로 발길을 옮겨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작품 영감을 위해 찰나의 순간을 스마트폰에 담아 둔다. 스마트폰 속 갤러리에 1만개 이상의 사진이 저장됐다. 이런 기억과 저장해놓은 사진 모두 인지하고 기억해 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무의식에도 저장된 이 데이터들은 해결이 필요한 순간에 구원의 손길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사색에 잠겨 있거나 잠들기 전, 화장실 등등 뜬금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재미난 아이디어를 던져주곤 한다"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최근 코로나19로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음악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며 "특히 밤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드라이브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운전이 주는 적당한 긴장감, 밤이 주는 특유의 차분함,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의도하지 않은 선곡의 신선함이 잘 융화돼 좋은 영감으로 이어진다"라고 전했다.

아모레퍼시픽 행사에 사용된 김승유 작가 작품 ‘동백꽃'. / IT조선
‘작가는 창의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김승유 작가는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창의적인 사람은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에 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라 표현한다. 왜냐하면 능력이 만들어 내는 변수보다 상황이 사람을 바꾸는 그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브릭 아티스트가 이미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 속으로 들어와 버린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브릭 아티스트는 한정된 브릭 안에서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타협하며, 브릭과 온종일 숨바꼭질하는 세계다. 내가 남다른 능력이 있다거나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해 본 적은 없지만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에 들어감에 있어 두려움이 없고,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김승유 작가는 창의력을 올리기 위해 우선 "레고 조립설명서를 버려라"라고 말한다. 김 작가는 "조립설명서 없이 레고를 새롭게 재창조(ReBuild) 해나가는 과정은 자신을 스스로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에 노출시키는 가장 쉽고 훌륭한 방법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레고를 구매하고 그것을 완성하는 과정은 사실 창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조립설명서를 보며 처음부터 끝까지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따라 해보는 하나의 조립과정일 뿐이다"며 "조립설명서 없이 자기 자신과 브릭만 남아있는 상황은 색다른 생각을 꺼낼 수 있는 힘을 찾아주고 재창조된 결과물의 완성도를 떠나 이러한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김승유 작가는 레고 아티스트를 꿈 꾸는 어린이들에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 작가는 "큰 결과를 내기 위해 그 재료와 도구마저 거창하고 거대해질 이유는 없다. 이미 브릭은 그 자체로써 이야기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충분히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조립이 복잡해야 하거나, 결과물이 기발해야 하는 부담감과 조급함을 덜어내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해 한 계단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김승유 작가 작품 ‘하늘을 나는 고래'. / IT조선
‘반트' 김승유 레고 아티스트는 예술계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작품에 온전히 매진하고 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며 나아가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혔다.

작가는 "플라스틱 브릭의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따듯한 감정으로 전하는 작가. 사람들에게 장난감 그 이상의 위로와 치유 그리고 행복을 주는 작가가 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라고 전했다.

최근 레고에서도 영화·애니 캐릭터 상품 증가로 설명서대로만 만드는 습관이 어린이들 사이서 만연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 김승유 작가 말 대로 조립설명서를 버리고, 레고의 본질인 창조의 즐거움을 어린이에게 전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창의성 개발 측면에서도 어린이에게 더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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