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의 신입 행원 취업 공고가 논란이다. 비판이 일자 국민은행은 취업 공고 8시간만에 채용 프로세스를 일부 변경했다. 비교적 빠른 결정이었지만 여전히 취준생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좁아진 취업시장에 무리한 요구를 해 불을 부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취준생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원을 해야만 한다. 기업들이 아무리 갑질을 하더라도 취업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취업 시장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국민은행의 취업 공고가 논란이 된 이유는 이전에 없던 디지털 사전 과제 제출, 디지털 사전 연수 의무 이수 요건이 서류전형에 추가했기 때문이다. 서류 전형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은 입사지원서와 함께 3~5페이지 분량의 사전과제 보고서를 필수 접수토록 했다. 여기에는 자사의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현황, 강·약점, 개선 방향 등을 넣도록 했다. 시간은 촉박한데 입사자에 준하는 과제를 서류 전형에서 요구했다.

특히 문제는 취준생들의 아이디어를 대가없이 가져가려 했다는 점이다. 뽑지도 않을 이들에게 지나친 자료와 국민은행 모바일 앱을 강제로 다운로드 받아 테스트까지 강요했다. 국민은행 가입자를 늘리려는 꼼수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은 서류전형 과정에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해명했다.

여기에 국민은행에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독일어 성적을 요구했다. 독일에 지점이 없는 국민은행이 굳이 독일어 성적을 입력케 한 것은 독일어에 강한 특정인을 뽑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했다. 일각에서는 특혜 채용을 위해 시나리오를 준비한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과거 채용비리 사례까지 소환된 배경이다.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 ‘취업갑질’, ‘아이디어 강탈’, ‘자사 앱 설치 강제’, ‘채용 비리’ 등 갖은 추측이 난무한다. 반박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런 갑질이 비단 국민은행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메프는 2014년 최종 전형에 오른 11명을 수습사원으로 채용한 뒤 현장 테스트 평가라며 2주간 실습을 시켰다. 그리고는 덜컥 이들을 모두 불합격 처리했다. 카카오는 2018년 서류 전형 합격자를 뽑아놓고 아무 공지없이 한 달이 지난후 채용 자체를 취소 통보해 문제로 지적됐다. 애플코리아 역시 7개월 동안 3~4차례 면접과 신원 조회 등을 진행하면서 취준생 마음을 흔들고선 불합격 통보를 했다.

기업들은 더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취준생 입장에서 보면 너무도 가혹한 현실이다. 서류 전형에서 탈락은 다반사고 최종 면접까지 가더라도 2~3단계 면접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들어가도 인턴 등 여러 단계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실망과 좌절감만 맛본다. 불합격 통보를 일찍해 준 것이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그나마 마음을 정리하고 다른 기업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취준생들은 지금도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취업문을 꾸준히 두드린다. 기업들이 아무리 채용갑질을 하더라도 이들은 어쩌질 못한다. 이런 이들에게 혹자는 "지금 상황에서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씨는 생전 마지막 방송에서 "꿈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다르다"며 "1m 앞이 절벽인지 아닌 지 알 수 없는 어둠 속 청춘들이 최악의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의 좌절과 실망은 안된다. 기업은 이익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을 키워 젊은층의 취업난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제대로 된 정책을 펼쳐 이런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취업 시장의 자화상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이 아닐까 싶다.

유진상 빅테크팀장 jinsang@chosu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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