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秋收)의 계절이다.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는 시기다.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추가경정예산(추경)으로 집행된 디지털 뉴딜 사업 수행 기업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편차는 있겠지만, 꽤 많은 AI 관련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이 ‘정부 덕’을 봤다. 기술 개발에만 매진하던 기업들이 자금 확보와 동시에 사업 경험 기회도 잡을 수 있다.

가장 큰 덕은 사장될 뻔한 수많은 AI기업이 생명줄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겐 ‘재난 지원금’이나 다름없다.

2016년 알파고 이후, 많은 기업이 AI개발에 뛰어들었다. 2~3년간의 개발과 서비스 고도화를 준비했다. 2020년을 사업 원년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나설 계획이었다. 뿌린 씨앗을 거두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하필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유례도 없고, 상상의 범주를 넘어선 전염병은 시장을 얼어붙게 했다. AI라고 다를 것은 없다. 비대면사회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해외 시장 진출이 막막해졌다. 비대면 회의 등을 통해서는 어필하기 쉽지 않다. 스타트업 관계자 다수는 "기술력과 상관없이, 자국이나 큰 기업 솔루션을 채택하는 경향이 심하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다행히 디지털 뉴딜 사업으로 여유가 생긴 기업이 늘었다. 제대로 추수하기도 전에 고사하는 일은 면했다. 수년간 개발한 AI기술이 사라지는 비극도 피했다.

이제 한 고비 넘겼을 뿐이다. AI산업은 이제 시작이다. AI는 기술 특성상 후발주자가 쉽게 따라잡기 힘들다.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고, 새로운 차원의 서비스가 발생한다. 시든 작물은 비료를 줘도 제대로 자라지 못 하는 법이다. 지금처럼 성장 촉진제가 효과 있을 때, 더 줘야 한다.

이번 ‘디지털 뉴딜 추경’은 일단 효과적이었다. AI학습 데이터 확보 사업은 시기적절했고, 사실상 현금 지원인 점도 큰 힘이다. 딱 거기까지다. 수년동안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며 AI산업 확산을 위한 디지털 뉴딜이라고 외치면 안된다. 일자리 창출, 학습 데이터 확보 등 눈 앞의 성과에만 치중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추수는 병충해로 제대로 하지도 못 했다. 그래도 추수의 계절은 또 온다. 봄과 여름이 거칠면, 열매가 더 영근다는 속설이 있다. 이어지는 디지털 뉴딜에는 AI기업이 거친 계절들을 오랫동안 버티기 위한 지혜로운 정책이 담기길 바란다.

송주상 기자 sjs@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