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국내외에서 전기차 배터리 관련 영업비밀 침해 및 특허 침해를 두고 법적공방을 펼친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2월 SK이노베이션에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 조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최근 ITC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은 SK이노베이션이 증거인멸을 하고 있다며 제재해달라는 LG화학 요청에 대해 찬성 의견을 내기도 했다. 10월 26일(현지시각) ITC의 최종 결정을 앞둔 가운데 양사의 극적합의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된다. IT조선은 한국기업 간 ‘세기의 배터리 분쟁’ 결말을 합의 및 최종판결 시나리오로 나눠 살펴봤다.

LG화학(이하 LG)과 SK이노베이션(이하 SK) 간 ‘세기의 배터리 분쟁’이 끝까지 갈 분위기다. 배터리 업계는 10월 26일 예정된 양사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최종 판결을 앞두고 극적 합의를 기대했지만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ITC의 최종 결정은 한달이 채 남지 않았다.

SK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ITC가 별도 절차 없이 패소 결정을 내리는 경우다. ITC는 2월 SK에 대해 LG 배터리 기술을 빼낸 증거를 인멸했다는 이유 등으로 판결 전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다. ITC는 4월 SK의 예비결정 재검토 요청을 받아들였지만, 2010년 이후 재검토를 거쳐 예비결정 결과가 뒤집힌 경우는 없었다.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SK이노베이션
SK의 패소가 확정되면 미국 전역에서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 등 제품 생산과 유통, 판매가 금지된다. 이미 1조9000억원을 투자했고, 2공장 증설에 추가로 1조원을 투입할 미 조지아주 공장 가동에도 여파가 미칠 전망이다.

국내 또는 인근 국가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할 수도 없다. 이 경우 폭스바겐, 포드 등 고객사와 계약한 수주 물량에 대한 피해 보상도 고민해야 한다. 폭스바겐과 포드가 7월 ITC에 SK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부품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것을 금지하면 안 된다고 호소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SK 패소 후 배상 금액은 LG화학이 요구하는 합의금 규모보다 커질 가능성이 있다. 미 연방법 1836조에 따르면 영업비밀을 고의 또는 악의적으로 침해한 경우 법원은 침해자에 실제 손해액의 두배까지 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2019년 5월 미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이 공개한 소송장에 따르면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 영업비밀 침해로 인한 손실액이 10억달러(1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법원이 LG화학이 주장하는 손실 규모를 그대로 인정하면 최대 2조4000억원 수준까지 손해배상액을 청구할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LG가 지출한 수천억원의 소송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추후 합의금 협상에서도 현재보다 불리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SK가 기대를 걸 수 있는 카드는 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ITC의 SK 패소 최종판결이 나오면 60일 심의기간 내 수입금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조지아주 일자리와 미국 전기차 산업 보호를 위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한 건도 없었다. 특히 영업비밀침해 관련으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SK가 ITC의 결정에 불복해 미 연방고등법원에 항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항소 기간 동안 수입금지명령은 유효하기 때문에 피해를 감수하며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야 한다.

SK 내부에서는 LG가 조단위 합의금을 고집할 경우 합의를 포기하고 ITC 결정과 연방법원 판결까지 가보겠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흘러나온다.

SK 관계자는 "LG화학이 피해본 금액이 정확히 얼마인지 객관적으로 제시하면 거기에 맞추겠다"며 "소송을 먼저 시작한 당사자인 LG가 명확한 근거 제시 없이 분쟁만 이어간다면 SK도 묵묵히 가야할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 관계자는 "SK가 패소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영업비밀 침해 기업이란 꼬리표를 영원히 떼지 못할 것이다"라며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소송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