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CBDC에 힐끔→적극…다가오는 비대면 경제가 이유
연구·개발에서 ‘시범 운영’ 단계로 옮겨가
선두 달리는 중국 뒤로 미국, 유럽 줄줄이 추격
격차 좁히는 한국은행, 내년 파일럿 테스트 가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경제가 성큼 다가오자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패권 경쟁에 나섰다. 당초 ‘관심은 있으나 발행은 하지 않는다’며 연구·개발에 의미를 두던 일부 국가마저 시범 유통에 나서는 등 발행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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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세계 주요 은행 간 CBDC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중국이 가장 발 빠르게 디지털위안 시범테스트를 진행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한국까지도 디지털화폐 연구·시범운영 논의에 나섰다.

한국은행, 내년부터 파일럿 테스트 가동

그간 연구에만 치중하던 한국은행은 최근 CBDC 시범 운영 관련 움직임이 포착됐다. 한국은행은 아직 디지털화폐 발행 여부에 대한 입장은 뚜렷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다. 다만 최근 CBDC 연구·설계를 마치고 디지털화폐 업무 검토를 위한 외부 컨설팅에 돌입했다.

컨설팅을 통해 한국은행은 CBDC 기반 업무 과정·양식 설계를 살핀다. 특히 내년에 추진될 CBDC 파일럿 테스트 구축 사업의 세부 실행 계획을 마련한다.

컨설팅 과정을 마친 뒤 내년 한 해 동안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하고 제한된 환경에서의 CBDC 시스템 동작 여부 등을 확인하게 된다.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 유통하는 현금과 같이 한국은행이 발행과 환수를 맡고, 유통은 민간이 담당하는 식이다. CBDC 보유 현황과 거래 내역 등을 기록하는 CBDC 원장은 분산원장(블록체인) 방식으로 관리한다.

한 발 앞선 中…내부 테스트서 이미 2000억원 상당 거래 성공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CBDC 개발에 나선 곳은 중국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CBDC 연구·개발에만 머무른 반면 중국은 CBDC를 통해 국가경제 변혁을 촉진하겠다는 차원에서 이를 다뤄왔다.

실제 중국은 올해 4월부터 일부 도시를 대상으로 디지털위안 시범운영을 시작하는 등 디지털위안화 발행에 속도를 낸다. 현재는 베이징과 톈진, 장자커우 등 수도권 지역까지 영역을 넓혀 시범운영을 진행하고 있다.

시범운영 규모도 다른 경쟁 국가들과 비교해 크다. 최근 중국은 내부 파일럿 테스트 단계에서 11억위안(약 1892억원) 이상 규모의 거래를 마쳤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년간 중국 주요 도시에서 디지털위안 시범 운영을 통해 약 313만건의 거래(거래액 11억위안)를 처리했다.
중국은 조만간 올림픽 경기장에서 실증 실험에 나설 예정이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송금·결제를 진행할 수 있는 모델을 고려하고 있다. 올림픽을 보러오는 세계 관중을 상대로 디지털위안화의 국제화 가능성을 시험해보겠다는 취지다.

발행 계획 없다던 미국, 디지털달러 발행 시사

미국도 디지털화폐 연구·실험에 나섰다. 발행 계획이 없다던 기존 입장에서 돌아선 셈이다. 중국을 의식했다는 분석에 힘에 실린다.

미국은 연방준비제도가 나서 분산원장기술과 이에 기반한 디지털달러에 대한 연구에 한창이다. 포브스 등 외신에 따르면 라엘 브레너드 연준 이사는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회의에서 "연준은 분산원장기술과 CBDC의 잠재적 사용에 관한 연구·실험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점을 들며 "코로나 사태는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하고 유연한 결제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다"며 디지털달러 발행을 시사했다.

일각에선 적극적이지 않던 미국이 이처럼 나서는 것을 ‘발 빠르게 치고 나가는 중국을 의식한 행동’이라고 본다. 실제 브레너드 이사는 중국 디지털화폐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들며 "세계 달러 역할을 생각하면 연준은 디지털화폐 연구와 정책 방면에서 선봉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도 디지털유로 발행 논의 시작

유럽중앙은행(ECB)도 디지털유로 발행을 위한 공개 논의에 나섰다. 내년 안으로 디지털유로 도입 여부를 결정짓겠다는 계획이다.

ECB는 공식 보고서를 통해 유럽인들의 저축·소비·투자가 점점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점을 들며 "유로화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지 확인하고, 필요 시 디지털유로를 발행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썼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ECB는 이미 디지털유로가 소매시장에 미칠 영향, 디지털유로가 유럽 경제정책 체계(유로시스템)와 어떤 방식으로 연계될 지 등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이를 토대로 약 6개월에 걸쳐 공개논의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공개논의를 진행한 뒤에는 디지털유로 발행 여부를 결정하고 파일럿 테스트에 나선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회장은 "디지털유로 설계방식을 결정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이르다"며 "대규모 실험을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