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73년작 ‘신조인간 캐산(新造人間キャシャーン)’은 ‘독수리오형제'에 이은 다츠노코의 두 번째 SF히어로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인간을 말살하려는 로봇에 대항해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불사신 전사 ‘캐산'의 활약을 그렸다. 타츠노코 특유의 캐릭터와 주인공의 비극 등 진지한 내용으로 40년이 지난 지금도 마니아들 사이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캐산과 함께 싸우는 개(犬)로봇 ‘프렌더'는 전투기·자동차 등으로 몸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독특한 변신 설정이 ‘허리케인 포리마' 등 이후 등장할 여러 애니 작품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신조인간 캐산 일러스트. / 다츠노코프로
신조인간 캐산 일러스트. / 다츠노코프로
캐산 애니메이션 내용을 함축하면 이렇다. 지구의 공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BK-1이 벼락에 맞아 자아(自我)를 가지게 되면서 지구를 더럽히는 인간을 제거하는 '안드로 군단'을 창설한다. BK-1을 만든 아즈마 박사의 아들 테츠야는 두 번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지 못할 각오로 자기 자신을 개조해 죽지 않는 전투용 '네오로이드'가 되어 안드로 군단에 맞서 싸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조인간 캐산 오프닝 영상. / 유튜브

다츠노코 프로덕션은 당초 캐산을 독수리오형제에 이어 일요일 오후6시 방송될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했다. 하지만, 독수리오형제가 큰 인기를 얻어 방영기간이 예정보다 1년 더 길어지는 바람에 독수리오형제와 병행 제작되면서 다른 시간대 방송됐다.

캐산은 1970년대 당시 독수리오형제 인기에 뭍히고, 세계적인 경제난으로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원유가격 상승으로 세계적인 경제혼란을 촉발한 1970년대 ‘오일쇼크'로 캐산 애니 제작비를 대던 기업이 파산하고, 예산을 삭감했다. 이 탓에 타츠노코는 예정보다 짧은 35화(9개월 분량)에 캐산 이야기를 끝맺음해야만 됐다. 이후 캐산 DVD를 제작한 콜롬비아뮤직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캐산은 당시 제작비 문제로 35㎜ 필름이 아닌 이 보다 저렴한 16㎜ 필름으로 촬영됐다.

함께 방영된 독수리오형제도 당시 캐산의 수명을 단축시키는데 일조했다. 다츠노코에 따르면 독수리오형제는 최고시청률 26.5%, 평균 21%를 기록한 반면, 캐산은 평균시청률 15.9%에 그쳤다.

다츠노코에 따르면 ‘캐산’이란 이름은 기획자 중 한 명인 ‘마쯔야마 쯔라유키' 요미우리광고사 전무의 아이디어다. 다츠노코는 애니 제작 당시 ‘네오로이더'란 가칭을 사용했다. 캐산 감독인 ‘사사가와 히로시(笹川ひろし)’에 따르면 ‘캐산'이란 이름은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유리는 한 번 깨지면 두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를 융합해 탄생했다.

애니메이션 업계는 캐산이 ‘개구리왕눈이'와 피노키오를 리메이크한 작품 ‘목크' 등 1970년대 다츠노코가 선보인 ‘메르헨 판타지' 장르 애니 콘텐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캐산의 무대는 동화처럼 명확하게 설정돼 있지 않았으며, 배경 그림은 북유럽의 오래된 성과 돌로 만들어진 길 등이 그려졌다. 두 번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는 주인공은 인간이 되길 원하는 ‘피노키오'의 요소를 담았고, 주인공의 어머니가 백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판타지적인 요소의 일부라는 것이다.

신조인간 캐산 일러스트. / 타츠노코프로
신조인간 캐산 일러스트. / 타츠노코프로
애니 ‘신조인간 캐산'에는 개성있는 양산형 로봇과 인공지능 로봇이 이끄는 로봇군단이 적으로 등장한다. 애니 업계는 보스급 대형 로봇이 아닌 양산형 로봇과 싸우는 연출이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애니메이션 작품 속에는 캐산의 활약 외에 로봇으로 구성된 안드로군단의 공격을 받는 인간들의 모습이 매회 그려진다. 이야기 전반 부에서 사람들은 안드로군단을 쓰러뜨리는 캐산을 영웅으로 추앙하며 응원하지만,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이 기계의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영웅을 기계로 취급하고 학대하는 등 인간의 이면성을 연출했다.

독수리오형제가 악당에 맞서 싸우는 정통파 영웅이라면, 캐산은 인류를 구할 유일한 존재이지만 인간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고독한 영웅이다. 1970년대 당시 애니로서는 매우 독특한 짜임새를 갖춘 캐산의 인간 드라마는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된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업계는 물론 애니메이션 팬들의 평가다.

사사가와 감독은 캐산에 앞서 ‘개구리왕눈이', ‘재채기 대마왕’ 총감독을 맡은 인물로, 본격적인 SF액션 작품은 ‘캐산'이 처음이었다. 캐산 설정집 등에 따르면 사사가와 감독은 영화 ‘타잔'을 바탕으로 캐산의 액션을 그려냈다. 캐산의 동료 프렌더는 감독이 만화가 시절 연재한 만화 ‘마견고로(魔犬五郎)’를 바탕으로 탄생됐다.

캐산의 스토리는 만화가이자 타츠노코 창립자인 ‘요시다 타츠오(吉田竜夫)’와 각본가이자 소설가인 ‘토리우미 진조(鳥海尽三)’가 글을 썼다. 원작자는 요시다로 표기됐다. 요시다는 ‘마하 고고고', ‘독수리오형제(갓챠맨)’ 등 인기작에서도 원작자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1974년작 ‘허리케인 포리마'를 남기고 197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토리우미는 1966년작 애니 ‘마법사 사리' 시나리오 제작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타츠노코 요시다 대표와 함께 ‘독수리오형제', ‘캐산', ‘허리케인 포리마'를 만들고, 이후 건담을 만든 선라이즈에서 ‘장갑기병 보톰즈', ‘기갑계 가리안' 각본과 타츠노코의 ‘초시공기단 사잔크로스' 제작에 참가했다. 토리우미는 2008년 간암으로 인해 78세 나이로 작고했다.

캐산 캐릭터 디자인은 타츠노코 대표 요시다와 게임 ‘파이널판타지' 일러스트로 유명한 ‘아마노 요시타카(天野喜孝)’가 맡았다. 아마노는 ‘테카맨', ‘타임보칸', ‘독수리오형제', ‘고왓파5 고담', ‘모스피다', ‘흡혈귀헌터D’ 등 애니 작품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다.

OVA 캐산. / 야후재팬
OVA 캐산. / 야후재팬
1970년대 원작 방영뒤 애니 마니아들 사이서 오랜기간 인기를 끌어온 캐산은 1994년 TV가 아닌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형식으로 리메이크 된다. 타츠노코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된 OVA 캐산은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와 캐릭터 디자인이 변화됐다.

실사 영화 캐산. / 야후재팬
실사 영화 캐산. / 야후재팬
캐산은 일본 영화사 쇼치쿠(松竹)를 통해 2004년 실사 영화로도 제작됐다. 실사 영화 ‘캐산(CASSHERN)’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설 ‘햄릿'의 구성을 더해 원작보다 비극성을 더 늘리고 SF 메카닉도 스팀펑크 스타일로 스타일로 바꿨다. 전반적인 조명과 색채도 어둡게 연출했다.

캐산 신. / 야후재팬
캐산 신. / 야후재팬
2008년에는 캐산의 또 다른 리메이크작 ‘캐산 신(CASSHERN Sins)’이 공개됐다. 애니 제작사 매드하우스와 극장판 ‘세인트세이야', ‘드래곤볼Z’ 등을 제작했던 ‘야마우치 시게야스(山内重保)’ 감독이 만든 ‘캐산 신'은 원작이 가진 세기말적인 세계관과 비극적이면서도 진지한 내용을 계승하면서도, 원작을 뛰어넘는 어두운 스토리와 인간이 아닌 인조인간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 본 내용을 담았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