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전 세계 ‘자본주의 스포츠의 꽃’으로 불린다. 낡고 고루한 스포츠 이미지 탓에 젊은 세대가 골프를 멀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오히려 스포츠와 기술(테크) 간 결합을 통해 젊은 층이 즐겨 찾는 위치에 올랐다. 낡은 스포츠가 아닌 최첨단 유행을 따라가는 스포츠 자리를 꿰찬 셈이다. IT조선은 매주 골프와 관련된 테크 소개를 통해 골프 애호가들의 골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골프 로봇이 홀인원에 성공한 시대
19세기 딤플 발견 후 골프와 과학 간 접목 본격화

골프는 600년쯤 전 스코틀랜드의 해안가에서 시작된 스포츠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그만큼 낡은 관념에 젖어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 종목이라는 평가도 있다. 경기 룰은 복잡하다. 프로 골퍼들도 가끔 헷갈려 한다. 사례별 적용 규칙을 묶어놓으면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이 나온다. 2019년 규칙을 확 뜯어고쳤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도 도도한 변화의 물결은 골프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TV중계 화면은 이제 작고 빠른 공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해 보여준다. 홀까지 남은 거리며, 각종 통계 자료는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선수들도 감이 아닌 ‘과학의 힘’을 빌려 연습한다. 군사 분야에서 사용되던 레이더 기술을 응용한 트랙맨은 공의 궤적을 쫓고, 초고속 카메라는 임팩트가 이뤄지는 그 찰나의 순간 클럽 헤드와 공의 미세한 변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옛날 스코틀랜드에서는 눈으로 거리를 재는 ‘목측(目測)’도 실력의 일부로 여겼다. 멀리 흘러가는 구름과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을 감안해 클럽을 선택했다. 잔디를 뜯어 허공에 날리면 촌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리 측정기가 핀까지의 거리는 물론 경사를 감안한 보정 거리까지 알려주는 시대다.

골프와 과학기술이 만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는 골프 로봇의 홀인원이었다. 2016년 2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 프로암에서 골프 로봇 엘드릭(LDRIC)이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로봇이 기록한 최초의 홀인원이었다.

골프로봇 엘드릭 모습. 이 로봇은 2016년 2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 프로암에서 로봇 최초로 홀인원을 기록했다. / 유튜브 동영상 캡처
골프로봇 엘드릭 모습. 이 로봇은 2016년 2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 오픈 프로암에서 로봇 최초로 홀인원을 기록했다. / 유튜브 동영상 캡처
골프와 테크의 만남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골프에서 현대적 의미의 테크 또는 과학이 적용된 최초의 사례는 딤플(골프 공의 오목하게 패인 문양)이 아닐까 싶다.

막대기로 돌멩이를 때리던 놀이가 골프라는 게임으로 발전하면서 나무로 깎은 클럽과 공이 출현했다. 초창기 골프 공은 너도밤나무를 둥글게 깎은 것이었다. 그러다 가죽 주머니 안에 오리나 거위 털 등을 가득 채워 넣은 페더리(feathery) 공이 탄생했다. 페더리 공은 말이나 소의 젖은 가죽을 세 조각으로 재단해 만들었다. 큰 조각 하나와 작은 조각 2개로 구성됐다. 이 세 조각을 작은 구멍만 남기고 봉합한 뒤 이를 뒤집고 그 구멍으로 깃털을 넣어 봉합했다. 이후 건조시키면 가죽은 수축되고 깃털은 팽창하면서 단단한 골프 공으로 완성됐다.

페더리 공 작업은 무척 힘들어 숙련된 작업자도 하루에 서너 개 정도만 만들 정도였다. 당연히 값도 비쌌다. 제작자의 건강에도 좋지 않았다. 곰팡이가 핀 깃털 때문에 폐 질환에 걸리거나 몸의 무게를 이용해 깃털을 채워 넣는 압박 과정에서 갈빗대가 부러지는 일도 발생했다.

시대별 골프 공의 모습. 왼쪽부터 가죽 안에 깃털을 채워넣은 패더리 공, 구타페르카 공, 수제 단조 구타 공, 산딸기 무늬의 구타공, 고무공, 현대의 공 / 타이틀리스트
시대별 골프 공의 모습. 왼쪽부터 가죽 안에 깃털을 채워넣은 패더리 공, 구타페르카 공, 수제 단조 구타 공, 산딸기 무늬의 구타공, 고무공, 현대의 공 / 타이틀리스트
골프 공에 일대 변화가 온 건 1848년이다. 세인트앤드루스의 로버트 패터슨이 ‘구타페르카’(gutta-percha: 줄여서 구티(guttie)) 공을 발명하면서다. 구타페르카는 동남아 지역의 구타 나무의 진액으로 물과 함께 끊이면 유연성이 생겨 공의 형태를 만들기가 용이했고, 냉각시키면 단단하게 굳는 성질이 있었다.

구타페르카 공은 깃털 공보다 더 멀리 날아갔고,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가격 또한 저렴해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도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골프공의 규격화도 이때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구타페르카 공에는 단점이 하나 있다. 공을 사용하다 보면 표면에 쉽게 흠집이 생긴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점 덕에 골프 공의 상징인 ‘딤플’이 탄생했다. 골퍼들은 손상된 공이 더 멀리, 그리고 더 똑바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골프 공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끌이나 망치의 끝으로 공의 표면에 흠집을 내기 시작했다.

당시 제조업자들은 오돌토돌한 공이 왜 멀리 날아가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는 없었다. 이후 유체역학 등의 연구를 통해 딤플이 공 주변의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해 저항을 줄여준다는 사실과 공 위 아래의 압력 차이로 인해 양력이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 딤플은 경험을 통한 ‘발견’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우연한 발견으로 골프는 과학의 영역으로 점차 들어오게 됐다.

김세영 기자 sygolf@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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