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혁의 풀꽃나무이야기]충남 서산시에서 만난 작은 꽃들의 비밀

  • 이동혁 칼럼니스트
    입력 2020.10.17 06:00

    별의별 식물이 다 있는 동네로 충남의 서산시만한 곳도 없습니다. 높은 산이라고 해봐야 가야산(678.2m)이 고작인지라 고지대 식물은 많지 않지만, 그 외에 어지간한 저지대 식물은 다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매의 눈과 부지런한 발품을 겸비한 서산의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숨은 희귀식물을 속속 찾아내는 것도 무시 못 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보기 드문 식물인 솔붓꽃이나 개정향풀, 국명의 재지정이 숙제인 수궁초가 발견된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는 그러려니 하겠는데, 남한에는 없다고 믿었던 좁은잎사위질빵이 서산시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깝습니다.

    충남 서산시 소재의 간월암 전경
    북방계식물로 알려졌으나 충남 서산시에서 발견된 좁은잎사위질빵
    서산시의 지리적 위치가 좀 특이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서쪽으로는 태안군, 동쪽으로는 3개 시군(당진시, 예산군, 홍성군)과 접해 있으며 남북으로 바다에 닿아 있는 모습이 유럽의 프랑스를 연상시킵니다. 내륙과 바다를 반씩 접하고 있으니 다양한 식물이 자리해 살아갈 터전을 갖춘 셈입니다.
    희귀식물까지는 아니지만 비교적 드문 편인 꽃여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좀 놀랐습니다. 그전까지는 꽃여뀌를 남부 지방에서나 자라는 식물로 여기고는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까지 찾아가서 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해 도감에 담을 수 없었던 ‘올미’라는 식물도 서산시에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올미는 논바닥을 뒤지고 다녀야 볼까 말까 한 수생식물이라 산으로 다니는 사람의 눈에는 뜨일 수가 없습니다. 마침 지인께서 자생지 정보를 알고 계시기에 고맙게 소개받아 찾아가 보니 그곳은 전에 꽃여뀌 때문에 들르곤 했던 곳이었습니다. 그 주변 논에 물옥잠이 있는 것은 알았어도 올미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논가에 드물게 자라는 올미
    올미의 잎은 꽃 필 때까지도 선형 그대로다
    유사종인 벗풀이나 보풀의 잎이 화살촉 모양인 것과 달리 올미는 선형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벗풀이나 보풀도 처음에 내는 잎은 올미처럼 선형이어서 어린 개체의 모습만으로는 올미인지 아닌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번에 직접 올미의 실체를 보니 체구가 벗풀이나 보풀보다 훨씬 작고 꽃차례도 작았습니다. 올미의 학명 중 종소명인 pygmaea가 아프리카 피그미족처럼 아주 작다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는 자료가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개체수가 의외로 많았지만, 꽃 핀 것은 얼마 되지 않아 내년에 다시 와보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꽃여뀌는 분홍색 꽃이 예뻐서 이름 앞에 ‘꽃’자가 놓였다
    그 주변에서 드문드문 자라는 꽃여뀌는 성별이 재미있는 식물입니다. 대개의 자료에서는 꽃여뀌를 이가화, 자웅이가, 암수딴그루, 암수딴포기 등으로 설명합니다. 용어만 다를 뿐 그 말이 그 말이며, 암꽃과 수꽃이 각각 다른 개체에 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수꽃으로 알려진 꽃에서도 결실하는 모습을 제가 서산시의 꽃여뀌에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암꽃과 수꽃처럼 보였던 꽃여뀌의 꽃은 암술대 길이의 길고 짧음으로 구분하는 장주화와 단주화로 보아야 합니다. 그걸 이화주성이라고 합니다. 이화주성을 보이는 목본으로는 개나리, 미선나무, 만리화 등이 있고, 초본 중에는 앵초나 설앵초 등이 있습니다. 꽃여뀌의 수포기는 결실하지 않는다고 설명한 자료가 있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예쁜 꽃만 보지 말고 열매까지도 확인한다면 그런 자료가 틀렸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밝혀낼 수 있습니다.


    꽃여뀌의 단주화(수술보다 암술이 짧은 꽃으로 이 꽃에서도 열매를 맺는다)
    꽃여뀌의 장주화(암술이 수술보다 긴 꽃으로 당연히 열매를 맺으나 암꽃이 아니다)
    꽃여뀌가 이화주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유사종인 흰꽃여뀌도 의심스러웠습니다. 꽃이 대개 분홍색이고 듬성듬성 달리는 꽃여뀌에 비해 흰꽃여뀌는 꽃이 대개 흰색이고 촘촘하게 달리는 점이 다릅니다. 여러 자료에 흰꽃여뀌는 아예 성별에 대한 설명조차 없는 경우가 많아 확인이 더욱 필요했습니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시기에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는 일이 번거롭긴 했으나 보람은 있었습니다. 흰꽃여뀌 역시 암술이 긴 꽃이든 짧은 꽃이든 모두 결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흰꽃여뀌도 장주화와 단주화로 피는 이화주성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흰꽃여뀌는 꽃여뀌보다 흔하지만, 열매까지 관찰해본 사람이 많지 않았던 건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흰꽃여뀌도 수꽃처럼 보이는 꽃이 열매를 맺으므로 이화주성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꽃들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꽃 보는 일이 새로워졌습니다. 전에 몰랐던 식물의 자잘한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저를 다시 초보자로 만들어 꽃 앞에 세워두곤 합니다. 까마중, 주름잎, 선괭이밥, 울산도깨비바늘 등도 우리 주변에 흔한 식물이지만 이제야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그 꽃들에 어떤 곤충이 찾아와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하는지 관찰하다 보면 들판에 마냥 혼자 버려져 있어도 외롭지 않고 즐겁습니다.

    콩알처럼 작고 까만 열매가 달리는 까마중
    까마중을 들여다볼 때도 그랬습니다. 까마중은 ‘녹색동물’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즐거움의 단서를 찾아낸 식물입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토마토의 꽃이 350㎐의 소리굽쇠 진동에 반응해 꽃가루를 쏟아내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350㎐는 벌이 날갯짓할 때의 진동수라고 합니다. 그 진동수로 벌의 방문을 감지한 토마토가 꽃가루를 내보내는 것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토마토가 꽃가루의 낭비를 줄이는 획기적인 전략으로 꽃가루받이하려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신이 허락한 작은 키의 마법사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토마토가 속한 가지과의 식물 중 토마토처럼 수술이 바나나 모양으로 모여진 형태의 꽃이라면 비슷한 방식으로 꽃가루를 쏟아낼 것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가지, 감자, 도깨비가지, 배풍등, 까마중 등등…

    토마토의 꽃은 벌의 날갯짓 진동수인 350㎐를 감지하면 꽃가루를 흘린다
    토마토의 꽃과 비슷하게 생긴 가지의 꽃


    토마토의 꽃과 비슷하게 생긴 감자의 꽃
    토마토의 꽃과 비슷하게 생긴 도깨비가지의 꽃


    까마중의 꽃도 꽃밥의 끝에 난 구멍이 있어 그곳에서 꽃가루를 흘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중 가장 흔한 까마중의 꽃을 서산시의 들녘에서 만났을 때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한 것입니다. 역시나 꽃밥의 끝에 난 구멍으로 하얀 꽃가루가 나온 모습이었습니다. 한쪽 장갑에 내리쳐보니 남은 꽃가루가 살짝 묻어났습니다. 궁금증이 병처럼 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까마중의 꽃에는 어떤 곤충이 날아와 그 꽃가루를 묻히고 가는 건지 알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본 적이 없어 네티즌의 사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일단 파리류의 일종인 등에 종류가 정지비행으로 꽃가루를 먹는 사진이 있었습니다. 꽃에 거꾸로 매달린 양봉꿀벌의 사진도 있었습니다. 그런 자세의 양봉꿀벌은 까마중의 꽃가루받이에 도움이 되겠지만 등에 종류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손님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찍어두었던 사진을 뒤지다가 한 귀퉁이에 파리 종류가 우연히 찍힌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파리 종류는 까마중의 꽃가루받이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녀석은 양봉꿀벌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꽃가루를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분명 파리 종류이므로 벌의 날갯짓이 일으키는 진동수와는 다를 테니 꽃가루가 쏟아져 나와 몸에 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등에를 포함한 파리 종류들은 꽃밥 구멍에 묻은 꽃가루를 핥아먹기만 할 뿐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토마토를 비롯한 까마중 같은 형태의 꽃은 파리 종류를 단속하고 벌 종류에게만 꽃가루받이를 맡기는 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황금 들녘이 되어가고 있는 서산시의 논
    사실 이런 작은 꽃에 눈길 주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그런데 곤충과의 상호작용으로까지 관심을 확대하니 흔한 꽃도 처음 만나는 꽃처럼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곤충은 어떻게 꽃인 걸 알고 찾아와 무엇을 얻어가는 건지 정확히 알고 싶어졌습니다. 궁금증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데 계절이 빨리 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서산시의 들녘도 벌써 황금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습니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 freebowl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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