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84년작 만화 ‘변덕쟁이 오렌지로드(きまぐれオレンジ☆ロード)’에 대해 일본 만화 업계는 ‘러브 코미디’ 장르의 금자탑이라 평가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고, 또 이후 등장한 러브 코미디 장르 만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캐릭터 일러스트, 왼쪽부터 ‘카스가 쿄우스케’, ‘아유카와 마도카', ‘히야마 히카루'. / 야후재팬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캐릭터 일러스트, 왼쪽부터 ‘카스가 쿄우스케’, ‘아유카와 마도카', ‘히야마 히카루'. / 야후재팬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3040세대 많은 남성들이 오렌지로드라는 작품과 여주인공 ‘아유카와 마도카'를 기억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방영으로 인해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 하던 1980년대말 1990년대초, 당시 10~20대 사이에서 마도카의 인기는 지금의 인기 아이돌과 다를 바 없었다.

미모와 재능, 현명한 두뇌 등 뭐하나 빠지는 것 없는 무결점 미소녀 '아유카와 마도카'와 마도카를 사랑하지만 우유부단한 성격탓에 자신의 마음 전달이 서툰 남자 주인공 '카스가 쿄우스케', 주인공에게 연정을 품고 만 여동생 같은 캐릭터 '히야마 히카루'. 이 세 명의 연예 삼각관계에 ‘초능력'이란 요소를 섞어 재미나게 구성한 것이 바로 오렌지로드의 매력이다.

‘오렌지로드’로 러브 코미디 장르를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원작자 ‘마츠모토 이즈미(まつもと泉)’가 6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렌지로드 팬 입장에서는 2017년 고속도로 운전 중 급사한 마도카 성우 ‘츠루 히로미(鶴ひろみ)’의 사망 소식에 이은 두 번째 슬픈 소식이다.

오렌지로드 원작자 ‘마츠모토 이즈미'. / 산케이신문
오렌지로드 원작자 ‘마츠모토 이즈미'. / 산케이신문
만화가 공식 사이트는 13일, 작가가 ‘뇌척수액 감소증'으로 투병하던 중, 6일 입원 중이던 병원에서 6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만화가 마츠모토(본명 ‘테라시마 카즈야)는 1999년부터 ‘뇌척수액 감소증'으로 고생해 왔다. 이 병은 머리부분에 강한 충격이나 외상으로 인해 뇌척수액이 줄어드는 것으로, 두통과 어지러움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마츠모토의 뇌척수액 감소증은 4살때 당한 교통사고가 원인이다. 2004년 치료를 받았지만 2016년 역에서 어떤 남성과 부딪히면서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병이 재발했다. 마츠모토는 2년간의 투병생활 후 2018년 10월, 다시 작가활동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2020년 10월 6일, 입원치료 중이던 병원에서 뇌척수액 감소증과 2015년 심방세동 수술로 인한 심장 약화로 별세했다.

만화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단행본 1권 표지. / 아마존재팬
만화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단행본 1권 표지. / 아마존재팬
마츠모토의 대표작은 단행본 기준 2000만부 이상 판매된 만화 오렌지로드다. 작가는 오렌지로드 이후 ‘세사미 스트리트'라는 또 다른 러브 코미디 작품을 선보였지만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후 ‘신(新) 변덕쟁이 오렌지로드’ 소설과 단편집, 캐릭터 디자인 등의 일을 해왔다.

마츠모토의 사망소식에 많은 현지 만화 작가들이 위로의 뜻을 표명했다. 1980년대 만화 ‘스톱! 히바리군!’을 선보인 ‘에구치 히사시'는 "마츠모토는 소년점프 만화잡지 러브 코미니 노선을 탄생시킨 인물이다"라고 평가했다.

소년점프를 통해 러브 코미디 만화 ‘딸기100%’를 선보인 ‘카와시타 미즈키'는 "오렌지로드는 초등학생 시절 제일 좋아했던 작품이다. 마도카 같은 여성 캐릭터를 그리고 싶었고 항상 동경해왔다"라고 말했다.

만화 ‘라이어 게임'을 선보인 만화가 ‘카이타니 시노부'는 "‘만화가를 꿈꾼다면 마츠모토처럼’이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들어왔다. 마츠모토는 일본 러브 코미디계의 거장이다. 그의 죽음은 너무 빨랐다"라고 자신의 뜻을 밝혔다.

19세때 마츠모토의 어시스턴트 일을 맡았던 만화가 ‘오카자키 타케시'는 "어린시절 선생님 곁에서 작품 만드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왔다. 마츠모토 선생님에게 배운 모든 것은 만화가인 내 자신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 됐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만화 오렌지로드 마지막 장면. / 야후재팬
만화 오렌지로드 마지막 장면. / 야후재팬
◇ 1980년대 러브 코미디 만화 금자탑 ‘오렌지로드’, 만인의 연인 ‘마도카'

오렌지로드는 초능력을 가진 소년 '카스가 쿄우스케'와 불량소녀인 척 하지만 예쁜 외모와 고운 심성을 가진 여주인공 '아유카와 마도카', 그리고 그녀를 따르던 여자 후배 '히야마 히카루'의 삼각관계를 그렸다.

애니 오렌지로드 한장면. / 야후재팬
애니 오렌지로드 한장면. / 야후재팬
우유부단한 성격의 주인공 쿄우스케는 차례차례 닥쳐오는 사랑의 위기를 집안 대대로 이어지는 초능력을 이용해 해결한다. 개성 강한 등장인물과 초능력이란 소재는 자칫 지루하게 진행될 수 있는 러브스토리를 재미있게 꾸미는 요소다.

만화 오렌지로드의 최대 매력은 여주인공 '마도카'에 있다. 오렌지로드 애니메이션은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마도카의 특징을 살려 다수의 곡을 사용했고 그 중 몇 곡은 애니메이션 마니아 사이서 명곡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오렌지로드에 사용된 ‘거울 속의 여배우(鏡の中のアクトレス)’와 ‘댄스 인 더 메모리(Dance in the memories)’ 등의 곡은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넘어서 1980년대 일본 팝 시장에서 히트곡으로 자리잡았다.

애니메이션 오렌지로드 오프닝·엔딩 영상 모음집. / 유튜브

1984년 만화책으로, 1987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오렌지로드는 당시 ‘마도카 신드롬’을 만들어 낼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1980년~1990년대 마도카에 흠뻑빠진 지금의 중년 아저씨들은 마음 한켠에 아직도 마도카를 사모하는 마음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마도카 피규어가 고가에 거래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팔방미인'으로 평가받는 마도카는 오렌지로드 애니메이션에서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타카다 아케미(高田明美)’의 손길을 거치면서 원작 만화보다 더 예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다카다 아케미가 그린 ‘아유카와 마도카'. / 야후재팬
다카다 아케미가 그린 ‘아유카와 마도카'. / 야후재팬
원작자 마츠모토가 그린 ‘아유카와 마도카'. / 야후재팬
원작자 마츠모토가 그린 ‘아유카와 마도카'. / 야후재팬
실제로, 마도카 캐릭터는 원작자 마츠모토와 캐릭터 디자이너 마카다 사이서 그림체 차이를 보인다. 원작자 손에 그려진 마도카는 장면장면마다, 표지 일러스트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타가다 손에 의해 그려진 마도카는 얼굴 변함없이 섬세한 터치와 부드러운 컬러 조합으로 높은 퀄리티를 유지한다.

원작자 마츠모토 역시 마도카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마츠모토는 2014년 현지 매체(망가아넥스) 인터뷰를 통해 "오렌지로드 만화를 그릴 당시 만화 집필에 투여된 전체 에너지 70%를 마도카에 쏟아 부었다"며 ""즐겁기도, 괴롭기도 했지만 좋아해서 그린 캐릭터였다"라고 말했다.

작가는 오렌지로드 만화를 그리면서 인상깊었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마도카를 그린 것"이라며 자신이 탄생시킨 마도카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가감없이 표출했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만난 어린시절 마도카. / 야후재팬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만난 어린시절 마도카. / 야후재팬
오렌지로드 만화 에피소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마츠모토는 주인공 쿄우스케가 초능력으로 과거로 돌아가 어린시절 마도카에게 빨간 밀짚모자를 선물로 준 스토리라고 밝혔다. 작가는 "애니메이션에서 타임슬립 에피소드로 마지막편을 장식했다. 만화 원작도 여기서 이야기를 끝맺음해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당시 어시스턴트로부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는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오렌지로드 극장판 포스터로 쓰인 다카다 아케미의 일러스트. / 야후재팬
오렌지로드 극장판 포스터로 쓰인 다카다 아케미의 일러스트. / 야후재팬
애니메이션 오렌지로드의 인기는 1988년 극장판 ‘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 1989년 오리지널비디오애니메이션(OVA) 장편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졌다. 오렌지로드 OVA는 총3기로 나뉘어져 1989년 2월부터 1991년 1월까지 3년간 시리즈를 이끌고 나갔다.

이후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 변덕쟁이 오렌지로드'가 1996년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두 번째 극장판은 첫 번째 극장판의 후속작으로 기획됐으며, 마도카가 주인공의 초능력을 알고 있고, 마도카와 쿄우스케는 이미 연인 관계로 설정돼 있다.

다카다 아케미의 마도카 일러스트. / 야후재팬
다카다 아케미의 마도카 일러스트. / 야후재팬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