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국 게임에 판호(版號, 게임 서비스 허가증)를 발급하지 않은지 벌써 4년이 지났다. 넷마블이 2016년 만든 게임 ‘리니지2레볼루션’조차 아직 중국 땅을 밟지 못했다. 한국 게임 업계는 판호를 다시 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진척이 없다. 좌절스러운 소식만 들렸다.

중국은 판호 발급을 막은 채 한국에 신작 게임을 꾸준히 내고 돈을 벌어갔다. 최근에도 ‘원신’처럼 새로운 장르의 중국 게임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국 게임 매출 순위표 최상위권에 중국 신작 게임이 다수 포진했다.

답답한 가운데 국내 게임 업계는 울며 겨자먹기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개발에 열중한다. 중국의 거대 자본과 판호 발급 중단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띤 경쟁을 벌여 살아남아야 하는 탓이다. 한국 MMORPG를 ‘내수용’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 게임들은 중국 정부의 부당한 간섭만 없었다면 대륙을 휩쓸 수도 있었던 ‘K게임’의 새싹이었다.

게임 업계가 노력하는 와중에 정부는 거의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그동안 K게임의 새싹이 다 상했다.

이 가운데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발표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 보고서'의 한 대목은 의아하게 읽힌다. 한국을 마치 중국의 게임 ‘속국’인 것처럼 표현해서다.

콘진원은 "한국 게임 업계는 중국 당국이 대외적으로 한 번도 인정한 바 없는 한한령(限韓令)만을 푸념하고 기다리기보다 미국, 일본 판호 공략 사례를 참고해 새 방편을 모색해야 한다"고 썼다. "중국시장 진출 생각을 아예 접은 것이 아니라면 중국 게임시장이 지금, 또 앞으로 원할 게임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게 준비해야 할 때이다"고도 적었다.

중국이 한한령을 인정하지 않으면 부당한 제재가 없는 것이 되나? 중국은 세계 아이돌 그룹 BTS가 한미관계 발전 상을 받으면서 한국전쟁 70주년을 언급한 것만으로 ‘국가 존엄’을 건드렸다며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한한령은 엄연히 있었다. 잘 만든 한국게임들이 개발을 마치고도 한한령 때문에 중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

콘진원은 미국처럼 게임 개발 단계부터 중국 거대 자본을 끼고 함께하는 사례, 일본처럼 중국에서 ‘먹힐 만한’ 게임을 만들어 공략하는 사례도 제시했다. 이 또한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다.

경쟁은 공정한 판에서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한국 게임사가 중국 게임사와 경쟁하기 위해 중국 거대 자본을 낀다니, 개발 단계에서부터 ‘조공’을 바치는 것과 다름 아니다.

한국에서 중국 게임사는 게임을 자유롭게 서비스할 수 있다. 중국 게임 콘텐츠도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한국 이용자가 즐기며 자연스레 판단한다. 이 당연한 경쟁이 중국 시장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현실을 지적할 일이지, 왜 한국 게임사를 지적하는 것인가.

콘진원은 준정부기관이다. 콘진원이 낸 보고서를 보고,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의 판호 발급 제재에 무대책과 무대응,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한한령이 없었다는, 한국 게임사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지 않고 중국 자본을 끼고 게임을 만들라고 조언하는 ‘속국’ 마인드를 가져서가 아닐까.

정부는 지금이라도 속국 마인드를 버리고 중국 정부의 한국 게임 제재가 부당함을 지적해야 한다. 한국 게임사가 무조건 이기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는 말이다.

마침 한국 정부에게 중국 정부를 설득할 좋은 구실도 생겼다. 앞서 2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만나 "코로나19 사태를 함께 극복하면 양국 관계가 폭발적으로 발전할 것이다"고 언급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뒤에도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않았다. 한국 각계각층은 인도주의 차원에서 중국을 응원하고 지원했다.

중국은 5월 말 양회를 열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했다고 선언했다. 9월에는 코로나19 발원지 중국 우한에서 한국 인천으로 통하는 하늘길이 열렸다. 중국이 이야기한, 양국 관계가 폭발적으로 발전할 시기가 왔다.

한국 정부는 이 도화선에 꼭 불을 붙여야 한다. 그래서 한국 게임사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탄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