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부처와 확인해 개선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정확한 인과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독감백신 상온노출로 인한 유통·관리 문제부터 백색 침전물 발생, 사망 사건까지 발생한 가운데 보건당국이 내놓은 답변이다.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정은경 질병청장과 이의경 식약처장은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며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입장만 되뇌었다.

백신 유통·관리 개선 대책과 추가 조달 물량 관련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뚜렷한 재발방지 대책과 후속 조치도 없었다. 책임지는 자세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보건 당국의 부실한 대응이 종일 도마 위로 오르는 이유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일까. 사망자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현재까지 독감백신을 투여받은 이들 중 무려 9명이 투여 직후 사망했다. 대부분은 고령층이지만 이 중에는 17세 고등학생도 포함됐다.

의식불명에 빠지는 등 독감백신 추정 사고도 잇따른다. 운송과정과 백신 관리 체계에서 드러난 구조적 허점이 매워지지 않은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정부가 "괜찮다"고 하더라도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오다보니 보건당국에 대한 신뢰는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서 독감 백신 접종으로 사망이 공식 확인된 것은 여태까지 1건이었다. 2009년 10월 65세 여성이 예방 접종 이후 두 팔과 다리의 근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겪은 뒤 입원 치료 중 폐렴 증세가 겹치면서 이듬해 2월 사망한 사례다. 2009년 당시 독감 접종 이후 8명이 숨졌지만, 65세 여성만이 백신과 인과관계가 있음이 확인됐다.

국민이 원하는 건 보건 당국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역할과 책임이다. 지금의 보건당국은 문제가 일어나면 뒷처리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신속한 조치와 명확한 판단은 없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독감백신을 투여받은 다수 인원이 단시간에 사망하는 것을 두고 의아해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과 같이 이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을때는 같은 의료원에서 같은 백신을 맞은 인원에 대한 모니터링뿐 아니라 향후 같은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막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국은 접종 계획을 강행한다. 접종을 중단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다. 인과관계 결과가 나오는데만 최대 한 달이다. 이 기간동안 백신 접종에 대한 국민 불안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백신 유통·관리와 사고와 관련한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같은 사태는 독감백신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향후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보건당국이 백신 관리를 지금처럼 하면 진단키트와 방역으로 등으로 명성을 높인 K방역에 흠집만 갈 것이다.

정부가 정부다운 역할을 하길 바란다. 코로나19와 독감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을 우려해 독감백신 예방접종 중요성만 강조할 일이 아니다. 의약품 규제기관으로서 의약품 제조·관리에 대한 철저한 감독이 선행돼야 한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