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개발자, 공동 창업자마저 ‘脫 블리자드’ 후 새 게임 개발사 설립 활발
이전엔 이용자 기대 한 몸에 모을 게임이 처참한 완성도 때문에 조롱 받기도
오버워치2, 디아4 등 신작으로 돌파구 마련해야

게임 업계 명가인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내우외환에 휘청이는 모습이다. 주요 개발자들의 ‘탈(脫)블리자드’ 현상이 수년째 이어진다. 블리자드 공동 창립자이자 전 대표까지 새로운 게임을 만들겠다고 회사를 떠났다.

블리자드가 최근 선보인 주요 게임들은 큰 성과를 내지 못한데 이어, 발전은 커녕 퇴보했다는 비판까지 받는다. 콘텐츠 부족 현상도 심화된다.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2의 유료 콘텐츠를 더이상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버워치 역시 4월 마지막 캐릭터 ‘에코’를 추가한 이후 콘텐츠 추가 없이 오버워치2만 기다리는 상황이다.

마이크 모하임 전 블리자드 대표겸 공동 창립자 / 블리자드
마이크 모하임 전 블리자드 대표겸 공동 창립자 / 블리자드
베테랑 개발자들이 블리자드를 떠난 것은 2016년부터다. 블리자드 게임 개발을 총괄했던 롭 팔도와 디아블로3 부활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 조시 모스케이라 등이 ‘본파이어 스튜디오’를 세웠다. 2018년에는 디지털 카드게임 하스스톤에서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벤 브로드가 멤버들과 함께 ‘세컨드 디너’를 세웠다.

이어 마이크 모하임 전 블리자드 대표가 9월, 아내와 함께 게임 개발사 드림 헤이븐(Dream Haven)을 만든다고 밝혔다. 모하임 대표는 블리자드의 공동 창립자이자 前 최고경영자다. 1991년부터 2018년까지 27년간 회사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식을 듣고 블리자드 핵심 인력이 속속 드림 헤이븐에 합류했다. 더스틴 브라우더, 앨런 다비리, 벤 톰슨 등이다. 드림 헤이븐 임직원 27명 가운데 22명이 한때 블리자드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10월에는 블리자드 실시간 전략(RTS)게임 개발자들이 빠져나와 게임 개발사 프로스트 자이언트 스튜디오를 세웠다. 스타크래프트2 PD 출신 팀 모턴 대표, 워크래프트3 프로즌쓰론 수석 캠페인 디자이너 출신 팀 캠벨 PD 등 블리자드의 핵심 RTS 인력이 뜻을 모았다.

모턴 대표는 "블리자드에는 RTS 외에도 신경 써야 할 다른 프로젝트가 너무 많은 탓에, 새 RTS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차렸다"고 밝혔다.

블리자드(중앙),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컨드 디너, 본파이어 스튜디오, 드림헤이븐, 프로스트자이언트 로고 / 각 사 제공
블리자드(중앙),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세컨드 디너, 본파이어 스튜디오, 드림헤이븐, 프로스트자이언트 로고 / 각 사 제공
게임 업계는 핵심 인력들이 연달아 회사를 떠나는 것을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한다. 회사와 개발자간 의견 차이가 원인일 가능성도 제시한다. 다만, 업계 특성상 개발자의 이직이 원래 잦다는 점도 짚었다.

한국 게임 업계 한 관계자는 "게임뿐만 아니라 어떤 회사든 핵심 인력이 나간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다"며 "블리자드는 게임을 많이 만들기보다는, 오랜 기간 소수의 게임을 집중해서 개발하는 경향을 보였다. 개발자 개개인의 자유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고, 이 탓에 게임 개발 과정이나 사업 방향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다른 게임 업계 관계자는 "게임 업계에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식으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려 이직하는 경우가 잦다"며 "스타크래프트2를 포함한 기존 블리자드 게임이 부진하다. 이 게임 개발자들이 회사 내부에서 프로젝트 무게감이 떨어졌다며 꿈을 찾아 다른 게임사로 이직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게이머 찬사 받던 블리자드, 최근 안이한 대처와 수준 낮은 게임 조롱·혹평 받아


와이엇 쳉 디아블로 이모탈 선임 디자이너를 조롱하는 이용자의 이미지 / 온라인 커뮤니티
와이엇 쳉 디아블로 이모탈 선임 디자이너를 조롱하는 이용자의 이미지 / 온라인 커뮤니티
게이머들이 블리자드와 게임을 보는 반응도 예전같지 않다. 2000년대 초반, 특히 젊은 남성 게이머에게 블리자드는 최고 수준의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한 게임 명가(名家)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찬사가 아닌, 혹평이나 조롱을 받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2019년 블리자드가 자체 발표회 블리즈컨에서 공개한 모바일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은 세계 게이머로부터 거센 혹평을 받았다. ‘PC게임 신작’을 원하던 게이머에게 ‘모바일 전용 게임’을 내겠다고 선언한 탓이다. 호응 대신 야유가 쏟아졌다. 현장 방청객 중 한명은 질의응답 시간에 "이것(디아블로 이모탈) 혹시 철지난 만우절 농담 같은 것인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발표를 마친 블리자드 개발자는 싸늘한 분위기를 뒤집으려 농담조로 "여러분 휴대전화 없어요?(Do you guys not have phones?)"라고 물었다. 이는 PC 게임 신작이 없다는 불만 때문에 불 붙은 게이머들에게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올 초 블리자드는 인기 게임 ‘워크래프트3(2002년작)’를 리메이크한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를 출시했디. 하지만, 곳곳에서 어처구니 없는 버그가 발생한 데다가 그래픽 수준이 기대에 한참 못미친 탓에 혹평만 받고 자존심을 구겼다.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출시 당시 문제로 떠올랐던 텍스트 깨짐 현상 이미지, 블리자드는 금방 이 버그를 고쳤으나, ‘깐포지드’라는 조롱만은 최근까지도 남았다. / 온라인 커뮤니티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 출시 당시 문제로 떠올랐던 텍스트 깨짐 현상 이미지, 블리자드는 금방 이 버그를 고쳤으나, ‘깐포지드’라는 조롱만은 최근까지도 남았다. / 온라인 커뮤니티
블리자드는 한국 게이머 사이에서도 조롱과 혹평 대상이 됐다. 블리즈컨에서 나온 휴대전화 없냐는 개발자의 말은 ‘님폰없?’이라는 조롱으로 되돌아왔다. 한국 게이머들은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에서 ‘엘프’를 ‘깐프’라고 출력하는 텍스트 버그를 빗대 이 게임을 ‘깐포지드’라고 부른다.

베테랑 개발자와 게이머들의 호평을 모두 잃은 블리자드. 분위기를 반전하고 게임 명가로서 자존심을 되찾을 방법으로 ‘신작’을 제때 출시하는 것이 꼽힌다.

블리자드는 오버워치2, 디아블로 이모탈, 디아블로4 등 유명 IP 기반 신작을 준비 중이다. 단, 블리자드는 이들 작품의 출시 일정마저 밝히지 않았다 출시 일정을 묻는 질문에 블리자드 한 관계자는 "아직 공개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