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카드) 출시 및 발표를 앞두고 갈 길 바쁜 AMD가 구설에 올랐다. 소셜 미디어(SNS)에 공유한 PC 사진 몇 장이 한국인들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AMD 필리핀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지난 23일 오후, 자사의 라이젠 CPU를 탑재한 새로운 커스텀 튜닝 PC 사진 몇 장이 게시됐다. 한국의 인기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를 테마로 제작한 PC였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와 관심이 확산 중인 K-POP 열풍을 고려한다면 이 PC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매력을 갖췄다.


욱일 문양 배경으로 논란을 일으킨 AMD 필리핀 페이스북 계정의 커스텀 튜닝 PC 사진 게시물 / 커뮤니티 갈무리
욱일 문양 배경으로 논란을 일으킨 AMD 필리핀 페이스북 계정의 커스텀 튜닝 PC 사진 게시물 / 커뮤니티 갈무리
문제는 해당 PC의 배경으로 커다란 욱일기 문양이 사용됐다는 점이다. 논란이 된 이 사진의 배경은 선명한 욱일 문양을 중심으로, 후지산과 사무라이 갑옷, 일본 전통 목조 건물 등을 형상화한 도안이 함께 그려져 있다. 더더욱 일본의 욱일 문양이 확실함을 증명한다는 분석이다.

사진이 공개되고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관련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AMD를 성토하는 여론이 불같이 일어났다. K-POP 열풍을 이끄는 한국의 대표 걸그룹을 테마로 만든 PC의 배경으로 일본의 욱일 문양 그림을 사용했다는 점은 논란에 더욱 기름을 부었다.

해당 페이스북 게시물에 분노와 항의가 담긴 한국인들의 댓글이 무수히 달리기 시작하자 AMD와 해당 PC 제작자는 부랴부랴 문제가 되는 사진들의 배경만 지우는 방식으로 1차 대처에 나섰다.

그런데도 항의 댓글이 계속 달리자 결국 AMD는 해당 게시물을 완전히 삭제했다. 제작자 역시 해당 PC의 여러 사진에서 욱일 문양 배경이 들어간 사진만 모두 내렸다. 그러나, 이미 원본 게시물과 사진이 갈무리되어 국내 주요 커뮤니티로 퍼져 나간 상황이다.

해당 PC 제작자는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PC 전문 모더(modder, 특정 콘셉트 및 테마에 맞춰 일반 상품을 커스터마이징 하거나 수작업으로 직접 만드는 전문 제작자)로 알려졌다. 이번 블랙핑크 테마 PC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커스텀 튜닝 PC를 제작했으며, 평소에도 욱일 문양을 배경으로 하는 자작 PC 사진 다수를 SNS로 공유해왔다. 문제의 사진을 AMD 공식 계정에 공유한 사람도 AMD의 필리핀 담당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는 전문 모더가 제작한 멋지고 예쁜 커스텀 튜닝 PC의 사진이나 영상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공유하는 문화가 크게 활성화되어있다. AMD를 비롯해 글로벌 유수의 PC 하드웨어 제조사와 브랜드들이 자사 제품을 사용한 전문 모더의 작품들을 공유하며 브랜드 홍보에 이용하는 것도 업계의 대표적인 관행이다.

논란이 된 사진을 게시한 AMD의 필리핀 홍보 담당자와 해당 PC 제작자가 일본 욱일 문양에 대한 역사적 배경 및 그에 대한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반감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공식 입장 발표없이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욱일기 에디션’ 논란으로 인해 AMD는 한국에서 그간 꾸준히 쌓아왔던 브랜드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글로벌로 확산 중인 한류 및 K-POP 열풍에 편승하려다 되레 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해당 게시물과 사진은 이미 삭제됐지만, 관련 커뮤니티 및 AMD 코리아 공식 페이스북에는 이번 사건에 대해 AMD의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게시물과 댓글들이 무수히 올라왔다. 일각에서는 공식적인 해명이 없으면 AMD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도 전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논란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26일 현재, 아직 이에 대한 AMD 측의 공식적인 발표 및 해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