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아이폰12 시리즈 출시를 앞두고 단말 유통 업계의 시름이 깊다. 애플의 아이폰을 판매하는 유통업체는 의무적으로 시연용 아이폰을 직접 구입해야해 기깃값에 대한 부담이 크다.

이통3사 중 SK텔레콤은 애플 갑질에 더해 유통 업체에 아이폰12 시리즈 전 모델을 시연용 단말로 구입하도록 요구한다. 이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단말기를 매장에서 개통할 수 있는 자격을 주지 않는다. SK텔레콤 유통점은 애플과 이통사의 조건에 단말기 판매 조건에 따른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신도림역 테크노마트 / 김평화 기자
신도림역 테크노마트 / 김평화 기자
애플만 매장 시연용 단말 강매…유통 업계, 울면서 장사한다

26일 휴대폰 유통 업계에 따르면 유통업계에서는 애플의 아이폰12 시리즈 출시를 앞두고 불만이 크다. 애플이 아이폰을 판매하는 판매점에 시연용 단말을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는 강매 조항을 뒀기 때문이다.

시연용 단말이란 휴대폰 대리점 등 매장을 방문한 소비자가 제품의 기능을 미리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한 기기를 말한다. 실제 소비자가 구매하는 단말과 차이는 없으며 데모폰, 시연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통상 스마트폰 제조사는 시연용 단말을 유통 업계에 전량 지원하고 일정 시점이 지난 후 회수한다. 하지만 아이폰의 경우 대리점이 직접 구매해야 한다. 유통 업계는 시연용 단말기 구매 시 30%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구입할 수 있지만, 부담이 큰 것은 맞다. 아이폰12 시리즈처럼 총 4종으로 제품이 나올 경우 4종의 단말을 모두 구입한 후 시연폰으로 전시해야 한다.

단말 유통 업계 한 관계자는 "시연용 단말 기깃값의 일부를 할인해준다고는 하지만 결국 진열했던 기기는 거의 대리점 직원이나 직원의 지인이 매입하게 된다"며 "대리점에서는 빨리 재고를 털고자 손해를 보면서 넘기게 된다"고 말했다.

애플의 시연폰 강매 관련 조건은 2018년 불거진 이슈 중 하나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당시 애플이 휴대폰 유통망에 시연용 단말을 강매하면서 수년간 갑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애플이 아이폰을 새로 출시하면 다음 모델 출시 전까지 1년간 해당 모델의 시연용 단말 전시를 매장에 강제했다는 것이다.

KDMA 관계자는 "유통점은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구입한 데모폰(시연용 단말)을 제 때 팔지 못한 채 1년간 재고로 쌓아둬야 한다"며 "현재의 유통 구조는 유통점이 이같은 부담을 무조건 떠앉는 식이다"고 말했다 .

현재의 아이폰 판매 조건은 2018년 문제 제기 후 일부 완화되긴 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시연용 단말의 의무 전시 기간은 종전 1년에서 3개월로 줄어 들었다고 하지만, 아이폰 기기 가격이 통상 100만원 전후로 고가이다 보니 유통 업계는 매년 손해를 보면서 아이폰 장사에 나서야 한다.

아이폰 판매점, 애플 갑질에 SK텔레콤 조건까지 이중고

설상가상 일부 이동통신사는 애플 갑질에 추가해 새로운 판매 조건을 내걸며 판매점을 압박한다. KT나 LG유플러스와 달리 SK텔레콤은 아이폰 의무 구매 후 진열 조건을 추가로 내걸며 유통 업체를 압박한다.

SK텔레콤 대리점 한 관계자는 "타 이통사는 3개월 간 시연용 아이폰을 진열할 경우 일반 아이폰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SK텔레콤은 정말 최근에서야 1년 조건을 3개월로 조정하는 등 한박자 느린 정책을 판매 조건을 내걸었다며 "KT나 LG유플러스 판매점은 특정 아이폰만 전시해도 제품 판매를 가능토록 했지만, SK텔레콤은 아이폰 시리즈 전 모델을 판매점이 구입해 진열하도록 하도록 조건을 걸었고 동시에 이를 어길 경우 소매 대리점에 주던 아이폰 개통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아이폰12 시리즈는 라인업이 네 개나 되다 보니 전부 구매할 시 과거보다 부담이 더 커 걱정이다"며 "지방 대리점의 경우 1년에 아이폰 5대도 못 파는 곳이 있는데 이런 곳도 시연용 단말을 여러 대 구매해야 하는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애플이 출시 예정인 아이폰12 시리즈는 ▲아이폰12미니 ▲아이폰12 ▲아이폰12프로 ▲아이폰12프로 맥스 등 네 가지 모델이다. 역대 아이폰 시리즈 중 최다 구성으로 전 모델이 비교적 고가에 속한다.

모델 별로 가격에 차이가 있지만 최소 95만원(아이폰12미니 64GB 기준)에서 최대 190만원(아이폰12프로 맥스 512GB 기준)까지 이른다. 최소가 기준으로 네 개 모델을 구매하면 488만원이 들며 이를 30% 할인해 산다 해도 341만6000원이 든다.

SK텔레콤 측은 유통 업계의 이같은 주장에 이통 3사가 모두 아이폰 전 시리즈의 데모폰 구매 조건을 제시한다며 자사만 강매 조건을 강하게 두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KDMA와 각 이통사 대리점 등에 확인한 결과 타 이통사는 SK텔레콤처럼 개통 제약을 두는 등의 강매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