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더믹(세계적인 감염병 유행)으로 우리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세계대전과 석유파동, 글로벌 경기침체 등 그간 자동차 업계가 넘어온 파고는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자동차 산업의 지도를 완전히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들은 빠짐 없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생산 중단을 겪어야 했다.

시작은 중국이었다. 각 제조사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 부품 의존도를 높여왔는데, 이것이 화근이 됐다. 중국 내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부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뒤늦게 생산지 다각화 전략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부품공급 현황은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각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공급문제도 확산됐다.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의 공장이 멈춰섰고, 자동차 전시장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의 발길도 끊겼다. 소비자들은 미래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지갑을 닫았다. 최근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는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가 7000만대 초반으로 2019년(8756만대) 대비 20%쯤 감소할 것이란 전망치를 내놨다.

자동차 그룹, 제조업 탈피한 종합 서비스 모색

위기는 곧 기회다. 자동차 기업들은 서둘러 체질개선에 나섰다. 생산부터 판매까지 IT를 기반으로 한 비대면 서비스가 점차 확산됐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빅데이터 관리,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모빌리티 서비스 등 양산화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미래 친환경차 시장 주도권을 두고 테슬라를 위시한 신생 업체들과 기존 완성차 공룡들의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현대차가 구상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축소 모형물 / 현대자동차
현대차가 구상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축소 모형물 / 현대자동차
최근 ‘정의선호’ 체제로 전환한 현대자동차의 행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자동차 업체들의 고민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올 3월 현대자동차는 주주총회에서 정관을 변경하고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의 변신을 천명했다. 단순히 차를 만들어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동성(모빌리티)을 둘러싼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수소전기차를 위시한 친환경차 판매 확대와 함께 미래 이동수단 상용화에 역점을 둔다. 최근 도심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개인형 이동수단(퍼스널 모빌리티)은 물론, 교통체증을 획기적으로 피할 수 있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 새로운 이동수단의 기반이 될 스마트 시티 등이 현대차가 주목한 미래 먹거리다.

정의선 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수소연료전지를 자동차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인류의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라며 "로보틱스, UAM, 스마트시티 같은 상상 속의 미래 모습을 더욱 빠르게 현실화시켜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삶의 경험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올해 자동차 업계를 관통한 전략은 단연 ‘디지털 콘택트 마케팅’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자들은 직접 매장을 방문하는 것보다 온라인 구매로 눈길을 돌렸다. 자동차 회사들도 비대면 구매 채널을 통한 판매에 주목했다.

르노삼성차는 일찌감치 온라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신차 전용 마이크로사이트 내 온라인 쇼룸을 운영하고, 온라인 전용 사전 계약 혜택을 강화했다. 그간 자동차 업계에선 터부시 되던 TV홈쇼핑 진출도 적극적이다. 쌍용차는 올해 이례적으로 TV홈쇼핑을 통한 신차 출시를 전격 추진,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마케팅 비용은 줄었고 신규 소비자 유입은 늘릴 수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볼보 등 수입 브랜드들도 비대면 온라인 마케팅 확대에 한창이다.

디지털콘택트 마케팅 선두주자는 단연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다. 테슬라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부터 출고까지 철저히 비대면으로 차량을 판매한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한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는 것 외 서류작성도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구매자가 서비스센터에서 직접 전달받는 기존 차량 인도 방식을 탁송으로 전환했다. 테슬라는 오프라인 판매에서 발생하는 부대비용을 절감해 차량 가격을 평균 6% 인하할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감소 속 한국 시장 나홀로 성장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0년 9월 현재 국내 자동차 생산대수는 254만920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2.6%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글로벌 판매가 줄었고, 생산지연도 발생한 결과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수출 부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내수판매에 기대 버텼다. 1~9월 자동차 수출물량은 133만859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1% 감소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국산차 내수 판매는 118만5822대로 7.1% 늘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의 성장은 세계적으로 이례적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은 올해 모두 두자릿수대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어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의 선전은 강력한 신차효과와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 덕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19년부터 시작된 ‘신차 러시'가 내수를 지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BMW 신형 5시리즈 세계 최초 공개 행사가 한국서 개최됐다. / BMW코리아
BMW 신형 5시리즈 세계 최초 공개 행사가 한국서 개최됐다. / BMW코리아
수입차 판매도 늘었다. 9월 기준 국내 신규 등록된 수입자동차는 21만4736대로 전년 대비 17.8% 신장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도 달라졌다. BMW가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신차 공개 행사를 한국에서 열고, 국내 진출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신차 출시 시점을 앞당겼다.

구매에서 이용으로 모빌리티 분야 성장

코로나19에도 사람들의 이동을 막을 순 없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 덕분에 최근 카셰어링이나 호출형 택시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졌다.

펫 택시 등 호출형 모빌리티 서비스의 분화가 촉진된다. / 알라딘모빌리티
펫 택시 등 호출형 모빌리티 서비스의 분화가 촉진된다. / 알라딘모빌리티
최근 모빌리티 분야는 단순 이동을 넘어서 맞춤식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이동하는 펫 택시, 혼캉스(1인 호텔 바캉스)족을 겨냥한 카셰어링·숙박 연계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정부의 규제샌드박스 일환으로 택시 합승으로 비용을 저감하는 ‘반반택시’, 장기렌터카와 카셰어링을 연계해 렌트비를 절약할 수 있는 맞춤형 공유 서비스 등도 세를 넓혀가는 추세다.

여러 종류의 차를 바꿔가며 탈 수 있는 구독서비스도 모빌리티 업계의 신규 먹거리로 주목 받는다. 특히 카셰어링 업체들은 여러 브랜드의 다양한 차를 보유하고 있어 진정한 의미의 구독 서비스를 구현하기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에서도 카셰어링 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구독 서비스가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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