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전기차 보급 정책에 빨간불이 켜졌다. 전기차는 동급 내연기관차보다 가격이 비싸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보조금을 동시에 지원해 전기차를 구매하는 국민의 부담을 줄여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지자체 재정이 악화됐고 이것이 보조금 지급에 영향을 준다. 정부는 부랴부랴 지원책을 마련하려 하지만, 올해 세웠던 전기차 보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동차 업체는 비상에 걸렸다. 자체적인 지원책을 준비하는가 하면, 지자체별 지원금 현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전기차는 여전히 보조금 없이 소비자가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자동차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비싼 가격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9월 개최한 기술설명 행사 ‘배터리 데이'에서도 ‘반값 배터리'를 강조했는데, 이는 전기차 초기 구매 부담을 줄여야 승산이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초기 전기차 시장에서 경제성은 친환경성 이상의 판매 소구점이었다. ‘착한 소비자'들은 주행 중 배출가스가 없는 전기차의 친환경성에 주목했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저렴한 충전료와 유지비 등 경제성을 꼽았다.

그런데, 소비자들이 마냥 경제성 때문에 전기차를 구매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표도 있다. 국산 전기차와 수입 전기차의 최근 판매 양상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국토교통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 1~9월 국내 판매된 수입산 전기차는 1만3261대로 전년 동기 대비 8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국산 전기승용차 신규 등록대수는 1만3505대로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내수시장에서 수입차 비중이 10%가 넘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데, 전기차 시장에선 사실상 국산차와 수입차 간 실적 차이가 사라졌다. 소비자는 더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전기차를 구매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두푼 아끼자고 전기차를 선택하는 것이 맞는 말이라고 한다면 수입 전기차가 질주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동차는 일반인이 집 다음으로 비싸게 구입하는 소비재다. 큰 지출에는 깊은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다. 내 차를 구매할 때 이것저것 따져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차를 한 번이라도 구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차를 선택할 때 경제성 하나만 살펴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신용상태를 포함한 내 지불능력 안에서 브랜드와 주행성능, 디자인, 편의성, 안전성 등 여러가지 요소를 고민한다. 차종을 선택해도 트림이나 편의품목 구성을 놓고 몇달 며칠을 끙끙 앓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수입 전기차의 선전을 놓고 국민의 혈세(보조금)가 외국 기업에 무분별하게 흘러든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현재 전기차 시장에서 국산차는 수입차보다 상품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전기차 구입을 고민하는 소비자는 냉정할 수밖에 없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3분기 실적발표가 한창이다. 2021년 목표로 친환경 전기차 라인업을 확충하겠다는 메시지가 들린다. 내년에는 소비자들이 앞다퉈 살만한 매력적인 국산 전기차가 출시되길 기대한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