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국감서 ‘중고차 진출' 공식화
중고차 업계, 소상공인 피해 우려…’자체 혁신 가능’ 주장

중고차 업계가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허위매물 근절’을 선언했다. 현대차의 진출이 중고차업계에 횡휑하는 허위매물 때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업계는 허위매물 근절 플랫폼 추진을 통해 대기업 진출 차단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태세다. 협동조합 구성 등 ‘몸집 불리기’를 위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대기업 진출 키를 쥐고 있는 중소벤처기업부에 ‘대기업 진출 없이도 중고차 시장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지난 26일 ‘대기업의 중고차시장 진출 반대'를 외치던 장세명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대구조합장이 단식투쟁에 나선지 9일 만에 결국 응급실로 이송됐다.

중고차 업계는 연합회 고위 임원이 단식투쟁에 나설 정도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진출 저지에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결정할 중소기업벤처부는 ‘중립'이라며 모호한 입장이며, 오히려 자동차 제조사의 시장 진출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중고차 업계는 자체적인 혁신안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막기에 힘이 부친다.

장세명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대구조합장이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단식투쟁을 진행하는 모습. 그는 27일 응급실로 실려갔다. / 안효문 기자
장세명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대구조합장이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단식투쟁을 진행하는 모습. 그는 27일 응급실로 실려갔다. / 안효문 기자
2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그간 중고차 판매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이 돼 있어 대기업이 진출할 수 없었다.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종료되면서 대기업이 중고차 판매업을 영위할 방법을 막을 제도적 방패가 사라졌다.

양대 중고차 연합회는 즉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지만,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중기부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특정 분야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5년간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이 제한된다. 위반 사업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중소기업 적합업종보다 소상공인 보호를 한층 강화한 제도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8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사실상 회사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중고차 업계의 위기의식이 한층 강해졌다.

김 전무는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70~80%는 거래 관행이나 품질 평가, 가격 산정 등에 문제를 제기한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현대·기아차가 가진 차에 대한 노하우와 정보를 최대한 공유해서 할 수 있는 '오픈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는 중기부가 결정한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국감장에서 "현재 중기부는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본다.

앞서 2019년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에 대해 ‘부적합' 판정을 내린 상황인데, 현재로선 동반성장위원회의 의견을 중기부가 뒤집을 명분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영선 장관은 26일 국감장에 출석해 "전반적으로 (중고차 시장)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며 "바꾸지 못하면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서울 근교에 위치한 한 중고차매매단지 전경 / 안효문 기자
서울 근교에 위치한 한 중고차매매단지 전경 / 안효문 기자
대기업의 중고차 사업 진출에 대한 여론은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허위매물 등 중고차 시장의 오랜 폐해를 대기업이 해소해 줄 수 있다는 기대감 영향이다. 수입 중고차 시장에 등장한 ‘인증 중고차'가 일반 매매상사보다 차 가격은 10~30% 비싸지만 적어도 허위매물은 없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탄 점도 주효했다.

중고차 업계는 ‘상생협약' 불가론까지 나오며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기부는 유통 등 타 분야와 유사하게 완성차 업체들과 중고차 업체들 간 ‘상생협약'을 추진한다. 대기업의 사업 영역 등을 상호 합의 하에 설정하자는 식이다. 그러나 중고차 업계에서는 대기업, 특히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기존 소상공인들은 사실상 사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장은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와 유통까지 담당하는 전세계 유례없는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중고차 매매까지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라며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할 경우 신차 판매대수와 중고차 시세를 높이기 위해 좋은 중고차를
독점 유통하며 판매량을 조절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중고차 가격이 상향 평준화
되고 결국 소비자의 부담이 증가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중고차 업계는 자체적인 혁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위매물 근절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코리아카마켓'이 대표적인 예다.

‘코리아카마켓'은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가 구축한 중고차 매물정보 사이트로, 중고차 딜러들이 실제로 중고차를 매입하고 판매할 때 신고한 매물의 정보와 가격이 공개되는 게 특징이다. 판매 완료 시 해당 사이트에서 매물 정보는 자동 삭제돼 허위매물을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연합회 가입회원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협동조합을 구축, 자발적인 시장 정화 작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소상공인 보호와 소비자 권익 증진을 위해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은 반드시 저지해야한다"고 호소했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