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테크] 달에서 골프공을 날리는 엉뚱한 상상... 셰퍼드의 '문 샷'

입력 2020.11.07 06:00

골프, 지구 밖에서 실험한 최초의 스포츠
1971년 아폴로 14호 달 탐사 때 6번 아이언 샷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이라는 말이 있지만, 아마추어 골퍼들의 ‘로망’은 역시 장타다. 호쾌한 티샷을 날리는 맛으로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장타자는 스코어에 관계없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골프 역사상 최장타를 날린 사람은 누구일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그는 2002년 하와이 카팔루아 플랜테이션 코스 18번 홀에서 498야드를 날린 적이 있다. 대단한 기록이지만 최고는 아니다. 1974년 마이크 어스틴은 시니어 대회에서 516야드를 날렸다. 그것도 퍼시몬(감나무) 헤드에 스틸 샤프트 채를 이용했으니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1992년 텍사스 오픈 2라운드 때 칼 쿠퍼의 샷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는 무려 787야드의 초장타를 때렸다. ‘카트 도로 협찬’ 덕이었다.

미국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는 골프 역사상 최초로 지구 밖에서 샷을 한 사람이다. 사진은 셰퍼드가 미국의 달 탐사에 관해 쓴 책 ‘문 샷’의 표지 디자인./아마존닷컴
과학의 시각으로 볼 때 장타는 ‘중력과의 싸움’이다. 중력이 평소보다 작으면 골프공을 훨씬 더 멀리 날릴 수 있다. 해발 2300m가 넘는 멕시코 고원에서 펼쳐지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 챔피언십 때 선수들의 비거리는 10~15% 늘어난다.

시각을 지구 밖으로 넓힌다면 어떨까. 실제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에서 이런 엉뚱하고, 유쾌한 실험을 한 이가 있다. 미국 우주비행사였던 앨런 셰퍼드(1923~1998년)다.

지금으로부터 50년쯤 전인 1971년 2월 6일의 일이다.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던 셰퍼드는 암석 채취 임무를 마친 뒤 카메라 앞으로 무언가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 나왔다. 오른손에는 골프채, 왼손에는 골프공을 든 셰퍼드는 이렇게 말했다. "6번 아이언이 있고, 왼손에는 미국인에게 아주 친숙한 하얀 공이 있어요. 공을 땅에 놓은 뒤 샷을 할 건데 불행하게도 우주복이 너무 뻣뻣해서 양손으로 칠 수가 없네요. 그래서 한 손으로 벙커 샷을 할 겁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스윙은 달의 먼지만 일으켰을 뿐 공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뒤땅을 친 것이다. 세 번째 샷으로 공을 맞히긴 했지만 얼마 나가지 못했다. 셰퍼드는 또 다른 공을 지면에 내려놓은 뒤 네 번째 샷을 날렸다. 이번에는 비교적 견고하게 맞았다. 셰퍼드는 멀리 날아간다는 뜻으로 "마일스 앤드 마일스 앤드 마일스(Miles and miles and miles)"라고 외쳤다. 공은 30초 이상 날아 지구와 달의 중력 차이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셰퍼드의 이 골프 이벤트는 지구 밖에서 실험한 최초의 골프샷이자 첫 스포츠가 됐다.

우주복을 입은 앨런 셰퍼드가 달에서 샷을 하고 있는 모습./NASA 유튜브
달에서 샷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었던 밥 호프(1903~2003년)에게서 비롯됐다. 호프는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를 여는 등 골프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호프가 휴스턴에 있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한 건 1970년의 일이다.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을 다루는 특집 TV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골프채를 들고 다니는 습관이 있던 호프는 무중력 체험 등을 할 때도 골프채를 들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셰퍼드는 골프공의 비행을 통해 달의 중력 효과를 설명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달의 암석과 모래 샘플을 채취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도구가 골프채의 샤프트와 비슷했다.

셰퍼드는 휴스턴에 있는 리버오크스 컨트리클럽의 잭 하든이라는 프로골퍼를 찾아가 클럽 헤드 하나를 부탁한 뒤 이걸 NASA의 기술팀으로 들고 가 마무리 작업을 했다. 암석 채취 도구 끝에 윌슨 스태프의 ‘다이나 파워 6번 아이언’ 헤드를 붙일 수 있도록 개조한 것이다.

셰퍼드의 아폴로 14호 임무는 1년 전 아폴로 13호의 달 착륙 실패 직후에 이뤄졌다. 미국골프협회(USGA)의 역사가인 매기 라글은 지난해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NASA는 아폴로 13호 때문에 유머 감각이 없었다. 셰퍼드가 골프채를 가져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셰퍼드가 몰래 클럽과 공을 가지고 우주로 날아갔다"고 했다. 셰퍼드는 6번 아이언 헤드는 우주복에, 골프공 2개는 양말에 숨겼다.

셰퍼드는 지구에서 38만km 이상 떨어진 낯선 코스에서 벌어지는 이 이벤트를 당황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 휴스턴 근처 한 골프장의 벙커에서 스윙 연습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셰퍼드가 달에서 샷을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미국의 코미디언 밥 호프에게서 비롯됐다. 사진은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밥 호프 전시실의 모습이다. 가운데가 셰퍼드가 달에서 샷을 날릴 때 사용했던 6번 아이언의 복제품이다. 달 암석과 모래 채취 도구 끝에 윌슨 스태프 아이언 헤드를 붙였다. / 김세영
셰퍼드는 훗날 미국의 달 탐사에 관한 책을 내면서 제목을 ‘문 샷(Moon Shot)’이라고 했다. 셰퍼드가 달에서 사용했던 오리지널 6번 아이언은 USGA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있는 밥 호프 전시관에도 똑같은 아이언이 있는데 이는 복제품이다.

셰퍼드가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자 전 세계에서 축하 메시지가 쇄도했다. 그 중에서는 북미를 제외하고 전 세계 골프 룰을 관장하는 영국의 R&A가 보낸 편지도 있었다. R&A는 셰퍼드의 문 샷을 축하하면서도 모래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위트를 보이기도 했다. 벙커 정리는 지구 밖에서도 할 일이다.

김세영 기자 sygolf@chosunbiz.com

#골프 #테크 #골프&테크 #김세영 #앨런 셰퍼드 #밥 호프 #문 샷 #달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