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11시 58분, 중국 게임사 페이퍼게임즈가 ‘샤이닝니키’ 한국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서비스 시작 이후 불과 일주일 남짓한 기간 만에 안내문만 남기고 ‘야반도주’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비스를 마치면서 안내문에는 사과의 말 한 마디 없다. 최소한의 성의도 없다. 어색한 말투를 미루어 보면, 정황상 한국 지사를 거치지 않고 본사가 ‘번역기’를 돌려 글을 게시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중국을 향해 험한 말을 했다’며 한국 게임 이용자를 탓하는 뻔뻔함은 덤이다.

오래도록 게임을 즐겼던 국내 이용자와 게임 업계 관계자 모두 ‘이런 대처는 처음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 회사는 한술 더 떠 ‘자사와 중국 정부의 입장은 같다’며 ‘한복은 중국의 것’이라는 동북공정 논리를 담은 글을 공유했다. 한국 이용자를 향한 명백한 도발이다. 사실 이들이 제시한, ‘한국에는 의복 전통이 없어 명나라의 것을 받아 썼다’는 떼쓰기 논리는 논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 논리를 게임을 아끼고 즐겼던 이용자가 모인 커뮤니티에서 작별인사 대신 던졌다. 그야말로 ‘선을 넘는 행동’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얼마나 한국을 무시했으면 야반도주하면서 가짜뉴스를 퍼뜨릴 생각을 하나.

중국 게임사의 만행이 이번은 처음은 아니다. 회사를 가리지 않고 ‘먹튀’, 허위 광고 등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로 한국 이용자를 무시하는 행태를 수차례 보였다.

하지만 페이퍼게임즈는 여러 차례 인기 게임을 출시한 경험이 있다. ‘아이러브니키’는 2016년 한국 앱마켓 매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인지도도 있고, 한국 지사도 있다. 애초에 한복 아이템을 추가한 이유도 한국 이용자를 위한 ‘선물’을 마련한다는 차원이었을 것이다.

이런 게임사조차 중국 정부 혹은 홍위병 노릇을 하는 중국 이용자의 눈치를 보다가 바로 태도 돌변,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에서 추진하는 한국사 왜곡 정책)에 앞장선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중국 게임사가 한국에서 활동하며 보이던 친절한 모습이 ‘거짓 미소 가면’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 게임 기업이 한국 시장에 더 깊숙하게 침투하고 나면 ‘샤이닝니키’ 사태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중국 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들어 크게 늘었다. 9일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상위 10개 게임 중 4개가 중국 게임이다. 중국 게임 기업이 한국 시장 점유율과 수익을 모두 가져가고 있는 셈이다.

반면, 한국 게임 기업의 최대 시장인 중국은 여전히 막혀있다. 2017년 기준, 한국 게임 수출액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60.5%였다. 이것이 2018년에만 46.5%로 줄었다. 중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 게임 개발에 재투자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신작 게임을 만들어도 중국이 아닌 한국 시장에서만 ‘박터지게’ 경쟁하는 통에, 중견·중소 게임사가 성장하기 힘든 구조가 자리잡았다.

중국의 일방적 조치 때문에 한국 게임 기업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 자리를 중국 게임 기업이 치고 들어와 점유율을 높인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 중국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중국 게임 기업이 한국 게임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덩달아 커진다. 중국 정부와 게임 기업의 행태를 더이상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는 이유다.

우리 정부는 ‘속국 마인드’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는 이미 중국이 판호 발급을 막은 이후 거의 4년 동안 무대책으로 일관했던 부끄러운 전력이 있다. 판호에 관해 중국에는 아무말도 못하면서도 한국 기업에게는 ‘중국 기업을 끼고 개발하라’거나 ‘중국에 먹히는 콘텐츠를 만들라’는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 때보다 일이 더 심각해졌다. 중국이 게임 업계를 넘어 한국 문화와 국민을 대놓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이상 저자세로 일관할 이유가 없다.

샤이닝니키 사태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그 뒤에 우리 게임 업계의 암울한 미래가 비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최전선에 서야 한다. 강경한 조치라도 필요하다면 단호하게 실행해야 한다. 우리 문화 유산과 국민을 지키는 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