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 지원 등에 업은 중국에 ‘e스포츠 종주국’ 자리 위협 받아
이종엽 젠지e스포츠 총괄 해결책으로 ‘교육’과 ‘글로벌’ 제시
김혁수 콘진원 게임본부장 "한국 대회부터 표준화하고, 세계화 노려야"

한국은 e스포츠 산업이 태동한 나라이자 업계를 이끄는 ‘종주국’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지위를 위협 받는다. 풍부한 인프라와 탄탄한 팬층을 가진 미국,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이 무섭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상헌·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한국 e스포츠 재도약을 말하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참가자 이종엽 젠지e스포츠 마케팅 총괄은 상향평준화 속 e스포츠 강국 위상 되찾으려면 주제를 발제했다. 그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따라잡힌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이미 쫓아가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종엽 젠지e스포츠 마케팅 총괄 / 오시영 기자
이종엽 젠지e스포츠 마케팅 총괄 / 오시영 기자
이 총괄은 한국 e스포츠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중국에서 열린 2020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오프닝 영상’을 꼽았다. 이 영상에서 중국은 ‘중국에서 e스포츠가 탄생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이 e스포츠의 고향이라고 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종엽 총괄은 "세계 청중을 대상으로 이런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놀라우면서도, 한국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위기의식도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은 이미 e스포츠, 리그 오브 레전드 종목에 투자한 지 10년이 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문화·스포츠 행사 대부분이 중단되거나 오프라인으로만 진행하는 상황에서 2020 롤드컵이 상하이에서 대면 행사로 열린 것도 중국 정부의 지원 덕이었다.

김혁수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본부장은 종주국 한국, e스포츠 표준 제시하려면을 발제했다. 그는 "중국은 라이엇게임즈, 에픽게임즈, 액티비전 블리자드 등 영향력 있는 게임사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방법으로 공격적으로 영향력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2020 롤드컵에서 중국이 e스포츠의 고향이라고 발언하는 장면 / 오시영 기자
중국이 2020 롤드컵에서 중국이 e스포츠의 고향이라고 발언하는 장면 / 오시영 기자
중국 구단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세계 e스포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e스포츠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 세계 대회인 ‘롤드컵’에서는 2018년, 2019년 2년 연속 중국이 우승했다. 이 총괄에 따르면 이 결과가 업계에 충격을 가져다줘 ‘한국 리그(LCK)는 세계 수준에서 보면 3부리그에 불과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세계 e스포츠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외국 구단의 주축을 한국 선수가 이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 구단이 세계 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내면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한 나라지만, 정작 그 나라의 e스포츠 리그 수준은 낮다는 비판이다.

이 총괄은 한국 e스포츠 시장의 어려움을 해결할 핵심 키워드로 교육글로벌을 꼽았다. 그는 "중국처럼 강제로 e스포츠 인구를 늘리거나, 정부에 지원을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라며 "젠지는 e스포츠 아카데미를 통해 게임 교육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이 지닌 최고의 자원은 인프라다. 해외 지도자나 선수를 한국에서 교육한다면, 굳이 표준을 제정하지 않아도 우리 것이 자연스럽게 표준이 된다"며 "마치 K팝이 세계에서 인기를 끌자 자연스레 외국이 이를 배우려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K팝이 세계 표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젠지는 게임 교육을 통해 미국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최근 미국 대학이 e스포츠 팀을 만들고 여기서 활약할 학생을 모으고 있다는 정보를 보고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 총괄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외국에서 찾아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 총괄은 "게임을 잘하는 학생이 머리도 좋다는 것을 느낀다. 게임으로 대학을 간다거나 미국 유학을 하러 간다는 목표가 생기면, 게임만 하던 학생이 단기간에 성적도 확실히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하더라도, 업계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혁수 콘진원 게임본부장 / 오시영 기자
김혁수 콘진원 게임본부장 / 오시영 기자
김 게임본부장은 e스포츠 대회 운영 규정, 경기장 시설·장비, 관련 인력 양성의 국제 표준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선 한국 내 모든 대회 진행을 표준화하고, 이것을 해외에 퍼지게 해야 한다"며 "국제 대회 규격, 선수 권익 보호, 신체 기능 향상 등 국제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국제회의 혹은 게임사·구단·미디어 장비 업체·에이전트를 위한 e스포츠 전문 산업 교류 박람회를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