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자성체 내 스핀 전도 현상을 기술하는 스핀 확산 방정식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상용화에 걸림돌이던 전력 소모, 생산 수율 등 최적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개발 중인 차세대 메모리 ‘M램’의 상용화도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김경환 스핀융합연구단 박사팀이 차세대 메모리 소자인 스핀 메모리 소자에 관한 새로운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기존 패러다임과 다른 새로운 응용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24일 밝혔다.

기존 메모리 소자들은 램(RAM)처럼 빠르게 정보를 읽고 쓸 수 있는 ‘휘발성 메모리’와 하드디스크처럼 전력을 차단해도 정보가 유지되는 ‘비휘발성 메모리’로 나뉜다. 최근 학계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들의 장점을 결합해 빠른 속도를 가지면서 전력을 차단해도 정보가 유지되는 차세대 메모리의 개발을 서두른다.

왼쪽부터 김경환 KIST 박사·이중기 에너지저장연구단 박사·김지영 연구원/ KIST
왼쪽부터 김경환 KIST 박사·이중기 에너지저장연구단 박사·김지영 연구원/ KIST
스핀 메모리 소자는 아주 작은 나노 자석의 N극과 S극의 방향으로 0과 1의 정보를 저장하는 소자다. 전력이 차단돼도 N극과 S극의 방향은 유지되기 때문에 하드디스크 등에서 널리 활용된다. 이 나노 자석의 N극과 S극 방향을 따라서 얼마나 빠르고 쉽게 제어할 수 있는지가 차세대 스핀 메모리의 상용화 여부를 결정한다.

그동안은 외부에서 스핀을 주입해 나노 자석의 N극과 S극의 방향을 제어해왔다. 여기서 스핀이란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자석의 기본 단위다. 같은 N극과 S극의 방향을 갖는 무수히 많은 스핀이 한데 모여 하나의 자석을 구성한다. 외부에서 나노 자석에 많은 스핀을 주입하면 나노 자석의 N극과 S극의 방향을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외부의 스핀을 생성하고, 주입하는 효율이 좋지 않아 전력 소모가 커 상용화에 어려움이 따른다.

최근 나노 자석에 전류를 걸면 나노 자석 내부에 스핀이 형성된다는 것은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스핀의 거동을 분석하는 이론이 정립되지 않아 이들이 어떤 물리적 결과를 가져오는지 연구된 적 없다.

김경환 KIST 박사는 자성체 내 스핀 전도 현상을 기술하는 스핀 확산 방정식을 개발해 이론 체계를 확립했다. 전류에 의해 형성된 스핀이 외부로 발산될 때 외부에서 주입해주던 스핀과 부호만 반대이고, 나머지는 같은 효과를 준다는 결과를 얻었다. 외부의 스핀 주입이 없이도 나노 자석 스스로 N극과 S극의 방향을 제어할 수 있으며, 기존의 스핀 소자보다 최대 60%가량 전력 소모를 감소시킬 수 있음을 규명했다. 기존 외부 스핀을 주입하기 위한 구조물이 필요 없게 돼 간단한 구조로 메모리를 개발할 수 있다.

기존 외부 스핀 주입 방식과 자가생성 스핀 방식의 비교/ KIST
기존 외부 스핀 주입 방식과 자가생성 스핀 방식의 비교/ KIST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자기장의 당기고 미는 힘을 이용해 데이터를 처리하는 M램 기술을 개발 중이다. 자력 기반으로 전력이 꺼져도 데이터를 그대로 저장할 수 있는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일본 도시바와 STT-M램을 공동 개발 중이다. STT-M램은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비휘발성을 자랑한다. 삼성전자도 2019년 3월 28나노(㎚)의 eM램(내장형 M램)을 선보였다. 2000년대 초반 M램 개발에 뛰어든 이후 첫 양산 제품이다.

반도체 업계는 김경환 박사팀의 연구가 M램의 양산 및 상용화를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낸드플래시와 D램을 대체할 수 있는 M램 등 차세대 메모리는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시장이 본격 형성하는 시점에 맞춰 개발을 준비 중이다"라며 "차세대 메모리의 전력 소모, 수율이 최적화 하면 양산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경환 박사는 "이번 연구는 자성체 내에서의 스핀 전도 현상에 대한 학술적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라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통해 차세대 스핀 소자 구현에 가장 큰 걸림돌이던 전력 소모, 생산 수율 등 최적화 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원하고 KIST 주요사업 및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지원사업 등으로 수행됐다. 연구결과는 물리학 분야 저널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최신 호에 게재됐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