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면 으레 연예인 누구의 몇 주기를 알리는 기사가 뜨곤 합니다. 연예계의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여러 차례 일어난 달이라서 그렇습니다. 저에게도 몇 주기인지 세게 하는 일이 11월에 하나 있습니다.
식물학계의 원로였던 수운 전의식(樹雲 全義植) 선생님의 기일입니다. 벌써 7주기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코로나19 때문인지 선생님이 계신 용인로뎀파크수목장은 더욱 썰렁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는 알려진 프로필이 거의 없어서 저 역시 모르는 게 많습니다. 최근에 어느 분의 글에서 안 사실로 선생님은 1930년생이 아니라 1929년생이라고 합니다. 그럼 저와 서른아홉 살 차이가 아니라 딱 마흔 살 차이이니 여러 모로 계산하기 좋습니다. 저와 함께 2009년에 1433m의 가야산을 오른 것도 선생님 나이 여든이 아니라 여든하나라는 얘기가 됩니다. 최소한 선생님 정도 나이까지는 높은 산을 오르겠다는 저의 목표가 여든에서 한 살 더 높아지는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한 번도 제게 자신의 발견이나 공적을 자랑스레 얘기하신 적이 없습니다. 겸손이 부족한 제게 겸손의 모범이 되어주신 분입니다. 제주도의 모님이 습지에서 발견한 식물을 둥근잎택사라고 이름 붙인 것도 전의식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과의 여러 일 중 강원도 동강에서 겪었던 봉변이 곧잘 떠오릅니다. 줄여서 ‘동강 봉변’입니다. 그 당시에는 석회암지대에서 피는 작은 구절초 종류를 놓고 마키노국화가 아닐까 했었습니다. 그런데 동강 귤암리의 어느 지점에 흰색 외에 다양한 색깔로 피는 녀석들이 있더라, 하는 제보를 받고 확인차 선생님과 그곳으로 갔을 때였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약간의 술 냄새가 났고, 옆에서 말리던 부인도 나중에는 제 잘못을 운운하며 거드는 것이었습니다. 계속 반말과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덤빌 테면 덤벼보라는 식으로 도발하는 그를 보니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습니다. 왜냐면 저도 욕이라면 맛깔나게 할 줄 알고, 그 정도 몸집이면 얼마든지 메다꽂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선생님 보는 앞에서 같이 쌍욕하거나 몸싸움이라도 벌어졌다간 선생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후퇴하는 저를 보자 그 인간이 왜 도망가느냐며 더욱더 짐승처럼 날뛰었습니다. 간신배처럼 기른 수염이라도 한 번 당겼다 놨으면 좋겠건만, 그러기는커녕 욕 한마디 못해 준 채 차로 돌아오자니 너무나도 억울하고 속상했습니다. 경치 좋은 시골 동네에서 이 무슨 봉변인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하자 선생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냥 미친개한테 한 번 물렸다고 칩시다. 부인 되는 사람도 처음엔 말리더니 똑같이 그러네, 참!" 선생님의 느닷없는 미친개 비유에 화가 아니라 웃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게 2008년 10월 14일의 일입니다. 선생님의 자료를 찾아보다가 어느 분이 올린 동영상 자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2011년 가을이니 돌아가시기 2년 전이었고, 여느 때처럼 스틱 하나를 짚고 천문동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천문동은 열매가 반투명한 회백색을 띠는데 잎이 비슷한 방울비짜루의 붉은색 열매와 혼동하고 계셔서 제가 알려드렸고, 그 후로 선생님은 열매가 붉은색으로 익는 천문동이 정말로 없는 건지 찾아보셨던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나로도의 식물을 많이 못 보았다며 소탈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계신 듯했습니다.
실은 제가 어느 정도 옮겨 놓기는 했으나 옮기다 지쳐서, 그리고 일이 바빠지는 바람에 잠시 중단했는데 그새 블로그가 사라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자료를 어느 정도나 옮겨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저의 게으름이 너무나도 한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동혁 칼럼니스트는 식물분야 재야 최고수로 꼽힌다. 국립수목원에서 현장전문가로 일한다. ‘혁이삼촌’이라는 필명을 쓴다. 글에 쓴 사진도 그가 직접 찍었다. freebowl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