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벼농사 게임 돌풍 "독창성 부족 韓 인디게임이 배워야"

입력 2020.11.28 06:00

12일 세계 시장에 출시된 일본 인디게임 ‘천수의 사쿠나히메’가 업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게임 소재가 ‘벼농사’라서 독특한데다, 소규모 제작사가 만든 인디게임임에도 출시 2주만에 50만장(패키지와 다운로드 버전 판매량 합산)이 팔릴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일본 불매 운동이 한창인 한국에서도 많은 이용자를 모았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이미지 / 아크시스템웍스
업계는 이 게임의 성공 요인을 색다른 소재와 철저한 시장 분석, 디테일을 살린 게임성 등으로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모험을 시도하지 않고 벤치마킹에만 급급한 한국 인디게임 업계가 이 게임의 성공 사례, 독창성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따끔한 지적도 나온다.

벼농사해 캐릭터 키우는 액션 RPG
제작진 "생생한 벼농사 과정 담기 위해 취재·관찰·연구 과정 거쳐"

이 게임은 독특한 소재 ‘벼농사’를 자세하게 다루면서 횡스크롤 액션 게임과 적절히 연결했다. 줄거리는 무신과 풍양신의 딸 ‘사쿠나’가 신에게 바치는 쌀 공물을 모두 망친 탓에 벌을 받아, 짐승 모습 도깨비가 지배하는 히노에섬(도깨비섬)을 조사해 개간하는 것이다.

사쿠나는 벼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먹으며 강해진다. 농사에 필요한 비료는 도깨비와 싸워서 이긴 후 얻을 수 있다.

게임 주인공인 사쿠나가 논에서 잡초를 뽑는 모습 / 닌텐도
일반적으로 ‘생산’이 게임의 주요 콘텐츠인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생산은 보통 버튼만 눌러 씨앗을 뿌리고, 시간이 지나면 번거로운 작업 없이 일정한 결과물을 수확하는 것 뿐이었다.

천수의 사쿠나히메는 다르다. 먼저 벼농사로 캐릭터 레벨을 올려야 하는데, 이 과정이 실제의 벼농사만큼 상세하다. 밭을 갈고 볍씨를 고른 이후 모내기·수확·도정에 이르는 논농사의 과정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용자는 논의 토양이 비료의 삼대 요소 질소(N),(P), 칼륨(K)을 충분히 담고 있는지 꾸준히 확인하고 관리해야 한다. 벼의 성장을 방해하는 녹조류 해캄, 논에서 자라는 잡초도 게임 속 요소로 등장한다. 심지어 축사를 운영해 오리를 기르고, 오리에게 조류와 잡초를 제거하도록 하는 오리 농법도 구현했다.

제작진은 이 게임의 벼농사 콘텐츠를 충실히 구현하기 위해 베란다에서 직접 벼를 길러 밥을 해 먹는 관찰 일지를 썼다고 밝혔다. 일본 국회 도서관을 찾아 벼농사 논문을 읽고 농촌에 취재를 떠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게임을 만들면서 제작진은 벼농사 키트를 사서 베란다에서 직접 벼를 기르고,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먹었다. / 닌텐도 일본 홈페이지
독창성 토대로 철저한 고증, 새로운 재미 만든 점이 ‘천수의 사쿠나히메’ 인기 요인
벤치마킹, 인기 게임에만 매달리는 한국 인디게임 기업 자극 받아야

이장주 박사(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는 천수의 사쿠나히메에서 한국 게임 업계가 배워야할 점으로 ‘디테일’을 꼽았다. 철저한 고증으로 깊이 몰두할만한 콘텐츠를 만든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그는 "쌀은 익숙해 큰 관심을 불러오기 어려운 소재였다. 이 소재를 깊이 파고들어 이용자에게 색다른 재미, 몰두할만한 콘텐츠를 제공한 점이 성공 비결이다"며 "동물의 숲처럼 무엇인가를 키우고 가꾸는 게임이 인기를 끈다. 이보다 훨씬 디테일한 생산 콘텐츠를 생각하고 또 실현한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고 싶다"고 말했다.

한 인디게임 개발 기업 대표는 "기존 액션 RPG와 달리 캐릭터를 벼농사로 키우는 점, 벼농사 고증을 위해 개발자가 깊이 연구한 점이 인상적이었다"며 "한국 모바일 RPG 게임 대부분이 성장 방식을 누가 ‘더 많은 돈을 쓰느냐’로 잡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을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표현,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벼농사의 기법과 중요성을 심도 있게 담는 등 자연스럽게 서로 다른 장르를 혼합한 점도 놀라웠다"며 "한국에서 벼농사를 소재로 게임을 만들면 다소 고리타분하고 재미 없는 게임이 나왔을 것이다"고 말했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전투 장면 / 닌텐도
한국 게임 업계는 한국 인디게임 기업들의 다양·독창성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다. 앞서 전석환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실장은 9월 개최한 게임포럼에서 "한국 인디게임 시장은 독창성이 사라져서 이미 레드오션이 됐다"고 비판했다.

전 실장은 당시 "우리 인디게임 업계에는 서로 베끼고 벤치마킹하는 관행이 있다. 방치형이나 플랫포머 등 특정 게임 장르가 뜬다고 하면 그 쪽으로 게임을 개발하여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양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인디게임은 특유의 독창성과 존재 의의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인디게임기업 관계자는 "새로운 장르 혹은 소재의 게임을 출시해야 인디게임으로서 빛을 발하고, 이용자 눈에 띄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인디게임사는 게임을 만들기 전 비즈니스 모델 혹은 콘텐츠를 구상할 때 다른 인디게임을 참조할 수밖에 없어 결과물이 비슷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천수의 사쿠나히메 소개 영상 / 아크시스템웍스 코리아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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