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동맹 맺은 SKT, AI반도체 생산 왜 대만에 넘겼나

입력 2020.11.29 06:00

SK텔레콤이 25일 인공지능(AI) 반도체 ‘사피온 X220(이하 사피온)’을 공개하며, AI 반도체 사업 비전을 밝혔다. 사피온 핵심 설계는 SK텔레콤이 직접 수행했다. 반도체 개발을 위해 SK하이닉스와 협업했다. 제품 생산은 대만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가 맡는다.

반도체 업계는 SK텔레콤이 AI 반도체 생산 공장으로 삼성전자가 아닌 TSMC를 선택한 것에 의문을 가진다. SK텔레콤은 박정호 사장의 적극적인 구애 후 삼성전자와 ‘AI 동맹’을 맺었는데, 정작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사인 TSMC에 맡긴 것이다.

SK텔레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책과제 수행을 통해 사피온 후속 AI 반도체 개발도 진행 중이다. 2022년 양산에 돌입할 이 반도체 역시 TSMC가 생산을 담당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책과제로 수행하는 의미있는 사업이지만 국내기업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오른쪽)이 CES2020에서 고동진 삼성전자 사장과 디지털 콕핏을 체험하는 모습/ SK텔레콤
28일 반도체·이통업계에 따르면 AI 반도체 위탁생산에서 삼성전자를 배제한 SK텔레콤의 선택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나는 자회사인 SK하이닉스와 TSMC 간 협력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비용을 감안한 판단이라는 평가다.

SK하이닉스는 2016년 11월부터 TSMC를 통해 자사 메모리 컨트롤러IC를 생산 중이다. 이 제품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나 모바일용 표준저장장치(UFS)에 탑재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일부 공정에서 삼성전자와 거래를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TSMC와의 협력관계에 비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의 D램 분야에서 각각 1·2위로 경쟁관계다. SK텔레콤 입장에서 TSMC를 파트너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로 풀이된다.

SK텔레콤이 선보인 AI 반도체 ‘SAPEON X220’ / SK텔레콤
기술·비용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파운드리 시장은 공정 초기 수주에 성공하면 수율 개선이 빨라지고 가격 경쟁력에서도 앞설 수 있어 재수주 가능성도 커진다"며 "SK텔레콤이 AI 동맹을 염두에 놓고 삼성전자를 우선 택하기에는 모든 면에서 TSMC의 조건이 유리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53.9%(3분기 기준)로 압도적 1위다. 2위 삼성전자는 17.4%다. 점유율 격차가 3배쯤 된다.

SK텔레콤은 TSMC에 AI 반도체 생산을 맡긴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합리적 판단이었다는 뉘앙스를 드러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TSMC가 파운드리 1위 아니냐"며 "현업 부서에서 위탁 생산을 의뢰하면서 SK텔레콤의 요구 사항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곳으로 선택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SK텔레콤에 사실상 거절에 가까운 제시안을 내놨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기존 거래처인 엔비디아·퀄컴·IBM 등과 비교해 양산 초기 단계인 사피온은 물량이 많지않아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매력적인 제품이 아닐 수 있다.

김윤 SK텔레콤 부사장은 25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인공지능(AI) 행사에서 "향후 AI 반도체와 SKT가 보유한 AI, 5G, 클라우드 등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톱 수준의 AI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AI 동맹을 맺은 SK텔레콤과 삼성전자가 AI 반도체 분야 간 경쟁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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