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벤처·스타트업을 위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가 마련된다. 이에 따라 초기 기업 부담은 최소화하고 투자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30일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편 권고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온라인으로 열었다. 이번 공청회는 올해 8월 시행된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벤촉법)에 따른 새로운 투자 유형을 반영하고 창업·벤처 업계의 입장을 수렴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가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개편 권고안을 마련한 건 그간 벤처·스타트업 업계가 창업자에 불리한 조항이 있거나 계약서가 복잡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는 투자자와 이해관계인인 창업자에 의해 제각기 다른 조항을 담았다. 또 스타트업에 불합리한 조건이 벤처투자 계약서에 있거나, 상환의무로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법률적 자문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작성과정도 어려움이 따랐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유튜브 갈무리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 중소벤처기업부 유튜브 갈무리
가장 눈에 띄는 건 조건부지분투자(SAFE)와 같은 새로운 투자 유형이 포함됐다는 점이다. SAFE는 미국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가 고안한 계약 형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폭넓게 활용된다. 스타트업 기업가치 평가를 생략하고 투자한 뒤 후속 투자자의 기업가치 결정에 따라 선투자자의 지분율을 결정하는 형식이다.

권고안에 포함된 SAFE는 국내 현실에 맞춰 반영됐다. 창업 초기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환 만기일을 없앴다. 이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예외 경우에도 선택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계약서를 개편했다. 또 신속한 투자 유치가 가능하도록 계약서 조항은 10개 내외로 간소화했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대표는 "SAFE는 시드 단계 기업에 유용하게 활용될 투자 수단이다"며 "최근 미국에서 활발한 전환어음제도 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다만 조건부지분투자를 단행하는 벤처캐피탈(VC)이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는 점을 고려해 기업의 증자 이행 의무를 강제할 손해배상, 위약금 규정 등도 담아야 한다"며 "벤처투자 생태계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다"고 했다.

아울러 개편 권고안은 투자자와 기업 사이의 투자계약서(SPA)와 주주간합의서(SHA) 분리안을 마련했다. 기존에는 혼합형만 있었다. 하지만 권고안에는 필요에 따라 혼합형과 분리형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편의성을 높였다.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세분화된 계약서를 사용토록 권고하는 내용도 추가됐다. 이종건 대표는 "한 기업이 시드 단계부터 유니콘이 돼 가는 과정에서 여러 라운드에 걸쳐 투자를 유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러 이해관계자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고 계약서도 복잡해지게 된다"며 "단계별 상황에 맞는 실무적인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만들 것이다"고 했다.

 / 한국벤처캐피탈협회
/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번 권고안으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활성화될 전망이다. 벤처투자 표준계약서가 법무비용 등을 절감하고 투자 효율성을 높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엔젤투자협회 관계자는 "시장에 자금이 많이 풀리다보니 스타트업 기업 가치가 고평가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하기 어려워진 부분이 있다"며 "기업 가치 평가를 미루게 되면 투자 기회가 늘어나게 되고 또 보다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김종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상무는 "2018년 벤처기업을 위한 투자계약서 해설서를 배포하기도 했고 업계에서 표준계약서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혀 있다"며 "이번 표준계약서에는 기업의 후속 투자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SAFE 제도, 분리형 권고안 마련 등의 내용을 담았다"고 했다.

벤처투자 유관 단체는 공청회 등을 통해 수렴한 의견을 반영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최종본을 내년 초에 배포해 자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누구나 내달 10일까지 온라인 창구를 통해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장미 기자 mem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