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 생태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업계에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일컫는다.

9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AI 파마 코리아 컨퍼런스 2020’에서 국내 AI 신약 개발 전문가들은 "AI 신약 개발은 혼자 할 수 없다"며 "모두가 함께 협력하고 경쟁해야 관련 연구 생태계를 만들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김화종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장과 오지선 서울아산병원 정보의학과 교수 등이 참석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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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신약 개발, 상생·협력 중심의 생태계 조성이 관건"

김화종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장은 이 자리에서 AI 신약 개발에는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 의료기관 간 상생·협력 중심의 연구 생태계 조성이 관건이라고 의견을 냈다. 그는 "좋은 퀄리티의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AI 신약 개발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함께 상생하고 협력하는 생태계 조성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김 센터장이 몸담고 있는 인공지능신약개발지원센터는 2019년 3월 민관 협력으로 설립된 AI 신약 개발 지원조직이다. ▲산학연 네트워크 구축 ▲전문인력 양성 ▲기술·인프라·서비스 제공 ▲데이터 중개를 통한 신약 개발 지원을 담당한다.

센터는 업계 내 중간다리 역할을 자처한다. 제약사, 바이오벤처, 의료기관 등이 협력해 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 센터는 설립 이후 최근까지 제약·바이오 기업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AI 신약 개발 교육을 진행했다.

김화종 센터장은 "한미약품, 대웅제약, 종근당, 일동제약 등과 ‘AI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했다"며 "내년에는 AI센터의 연구 인프라를 이용해 컨설팅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이를 통한 성공 사례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데이터 중심병원과 MOU를 체결하는 등 협력 관계도 구축했다. 김 센터장은 "AI 신약 개발 생태계를 돌아가게 하는 건 결국 데이터다"라며 "데이터가 있어야 의미있는 결과를 낼 수 있고, 협력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를 위해 내년에는 데이터 중심병원과 실질적 데이터 활용을 위한 플랫폼을 구축하려 한다"며 "신약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공유 및 활용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병원간 오픈이노베이션도 필요… 임상 데이터 표준화 필수"

의료 데이터 표준화 측면에서 의료기관 간 오픈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양한 환자·질병 정보를 가진 의료기관 데이터가 표준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시판된 약물에 새로운 적응증을 규명해 신약으로 개발하는 ‘신약재창출’ 과정에 의료기관의 표준화된 임상(전자의무기록, EMR) 데이터를 곁들이면 임상시험 과정을 대폭 줄이면서 의료 산업 내 미충족 수요를 효과적으로 채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지선 서울아산병원 정보의학과 교수는 "AI를 활용한 신약재창출은 시간, 비용, 위험도 측면에서 기존 신약 개발 과정 대비 훨씬 효율적이다"라며 "여기에 의료기관이 가진 임상 데이터가 함께 적용되면 의료계 내 미충족 수요가 효율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일례로 탈모 치료제 미녹시딜과 발기부전증 치료제 비아그라(실데나필)를 들었다. 미녹시딜과 비아그라는 각각 고혈압과 협진증 치료제로 시판됐던 의약품이다. 이들의 또 다른 치료 효과가 발견된 건 우연의 일치라는게 오 교수 설명이다. 그는 "우연에만 의존하기에 의료 현장에는 미충족 수요가 너무 많다"며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임상 데이터를 활용하면 체계적 접근이 보다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환자 임상 진료 기록을 담은 임상 데이터는 아직까지 병원에만 존재해 접근성이나 활용도가 낮은 상황이다"라며 "이 데이터가 활용되면 높은 통계치를 얻을 수 있고, 임상시험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전에 해결되야 하는 점도 있다. 의료기관에서 작성하는 임상 문서는 평소 연구 목적으로 정리되지 않다보니 표준화되지 못했다. 실제 현재 국내 의료기관들은 각각의 EMR 시스템을 활용해 환자 상태 등을 기록한다. 오 교수는 "기존 임상 문서는 연구에 활용되기 어렵다"며 용어와 구조가 표준화된 데이터 모델인 ‘공통데이터모델(CDM)’을 제시했다.

기존에는 매 연구마다 데이터 추출·공유·취합·일치화 작업을 일일히 수작업으로 분석했다. CDM을 활용하는 의료기관은 공통의 분석도구와 분석코드를 공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데이터 추출 없이도 효율적으로 일관성 있는 분석 결과를 바로 얻을 수 있다는 게 오 교수 설명이다.

오지선 교수는 "투약·진단 정보 등 데이터를 표준화하면 일관성 있는 결과값을 얻을 수 있다"며 "이 같은 데이터는 신약재창출 및 신약 개발의 성공률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인 만큼, 아산병원을 비롯해 다수 병원이 CDM을 활용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