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1996년작 ‘천공의 에스카플로네(天空のエスカフローネ·The Vision of Escaflowne)'는 이세계(異世界) 판타지 작품인 동시에 슈퍼로봇물로 분류되는 애니메이션이다. 드래곤을 퇴치하기 위해 만든 탑승형 로봇 ‘메레프'와 ‘가이메레프'가 등장한다. 제목의 ‘에스카플로네'는 피(血)의 계약으로 움직이는 거대 가이메레프란 설정이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애니메이션 오프닝 영상. / 유튜브
파넬리아 왕자 반은 왕위 계승을 앞두고 자이바하에서 온 거대로봇 가이메레프와 용격대의 침공으로 자신의 왕국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한다. 몰락 왕자가 된 반은 대대로 왕가에 전해져 내려온 가이메레프 ‘에스카플로네'와 피의 계약을 맺고 히토미와 기사 아렌과 함께 가이아 세상을 모험하게 된다.
선라이즈에 따르면 에스카플로네 애니메이션은 기획 당시 ‘로봇 애니메이션에 순정만화 요소를 융합한다'는 컨셉으로 출발했다. 기획 도중 기계거인 에스카플로네는 로봇의 형태가 아닌 드래곤처럼 날개를 가진 변신이 가능한 전투기로 그려졌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는 판타지와 과학, 연예감정과 운명 등 다채로운 테마가 얽히고 섥힌 스토리로 만들어졌다. 폴란드의 바르샤바 국립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오케스트라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도 당시 화제를 모았다.
애니메이션은 그림(작화) 품질이 높기로도 유명하다. 작화감독을 맡은 오사카 히로시(逢坂浩司)를 필두로 소네 히로키(曽根宏紀), 카와모토 토시히로(川元利浩) 등 수준급 애니메이터가 다수 투입됐다. 이들은 1998년 선라이즈로부터 독립해 자체 애니 제작사 ‘본즈(Bones)’를 설립했다. 본즈는 클램프 원작 ‘엔젤릭 레이어', ‘강철의 연금술사', ‘크라우 팬텀 메모리’, ‘오란고교 호스트부', ‘에우레카 세븐', 극장판 ‘카우보이 비밥' 등 인기작을 탄생시켰다.
에스카플로네 메카닉 디자인은 야마네 키미토시(山根公利)가 맡았다. 야마네는 메카닉디자이너란 직업을 탄생시켰다 평가받는 오오카와라 쿠니오(大河原邦男)를 동경해 애니메이션 제작에 뛰어든 인물이다. 야마네는 에스카플로네에 앞서 ‘기동무투전 G건담' 메카닉 디자인에 참가했고, 에스카플로네 이후 ‘카우보이 비밥', ‘기동전사 건담 SEED’에 메카닉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는 일본 현지에서 방영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묻히는 듯 했으나, 한국을 포함한 해외 팬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아 2000년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했다.
극장판 에스카플로네는 한국기업이 출자회사로 참가한 탓에 일본판 DVD와 블루레이에도 한국어 자막과 음성이 포함됐다.
피의 계약으로 움직이는 기계거인 에스카플로네
애니메이션 ‘천공의 에스카플로네'에는 ‘메레프'와 ‘가이메레프'라 불리는 기계 거인이 등장한다. 메레프는 가이아 세상의 사람들이 드래곤을 퇴치하기 위한 만든 로봇이지만, 시간이 흘러 각국의 군사병기로서 활용되고 있다는 설정이다.
남자 주인공 반이 탑승하는 ‘에스카플로네'는 ‘가이메레프'로 분류된다. 가이메레프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그려지며 주로 왕족이 사용한다. 탑승자의 피를 가이메레프에 주입하는 ‘피의 계약'을 통해서 가동되는 탓에 계약을 한 자만이 조종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에스카플로네는 반의 고향인 파넬리아 왕국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가이메레프다. 극장판에서는 탑승자 반의 피를 대량으로 소비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선라이즈 설정 자료에 따르면 가이메레프는 전설 속 종족인 이스파노 족이 만들었다. 일반적인 메레프와 달리 150년 이상의 세월을 통해 완성된다.
희소성이 높은 기체인 만큼 수리비도 만만치 않다. 설정 자료에 따르면 에스카플로네 수리비용은 5000만길드다. 5000만길드는 부하기사들의 2000년치 월급과 맞먹는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