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게임 안에는 문학·과학·사회·상식 등 다양한 분야 숨은 지식이 있다. 게임을 잘 뜯어보면 공부할 만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오시영의 겜쓸신잡(게임에서 알게된 쓸데없지만 알아두면 신기한 느낌이 드는 잡동사니 지식)은 게임 속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잡지식을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다. [편집자 주]
2020년 한해와 코로나19 감염증은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은 일상생활의 모습을 바꿀 정도로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영문 위키에 따르면 26일 기준으로 세계 총 누적 감염자 수는 7980만명, 사망자 수는 175만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미국, 영국, 사우디 등 해외 각국에서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코로나19를 향한 인류의 반격을 시작하기도 했다.
게임 속에서도 대도시에 1주일간 정체 불명의 전염병이 퍼지는 사건이 일어난 적 있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대표작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에서 2005년 9월 13일부터 1주일간 일어난 ‘오염된 피 사건(Corrupted Blood incident)’이 그 주인공이다. 이 사건은 게임 이용자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하지만, 대규모 전염병이 돌 때마다 한번씩 회자되곤 한다.
이 효과는 원래 이용자가 레이드 던전에서 퇴장할 때 자동으로 사라지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시스템에는 한가지 결함이 있었다. 사냥꾼 직업의 펫이 전염된 상태에서 소환 해제된 뒤, 던전에서 나가서 다시 소환될 때, 디버프를 보유한 상태로 소환되는 것이었다. 이 버그로 게임 내 대도시에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학카르가 당시 최신 레이드 던전의 최종보스였기 때문에, 오염된 피 또한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강한 피해를 입혔다. 대도시 내에는 삽시간에 약한 이용자들의 시체가 바닥에 가득 쌓여갔다. 게임 내에서 죽으면, 오래 지나지 않아 부활할 수 있었지만, 불이익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게임 플레이를 해치는 역할을 했다.
전염이 퍼지자 게임 이용자는 마치 실제 세계의 사람들과 같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오염된 피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었으나, 게임 내 힐러들이 마치 ‘의사’처럼 나서 체력 회복 스킬을 사용해 죽어가는 이용자를 도왔다. 마치 ‘기자’처럼 호기심 있는 자세로 재빠르게 위험 지역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이용자도 등장했다.
일부 이용자는 마치 ‘민병대’같은 조직을 꾸려 전염병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 초보자가 감염 지역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재빠르게 감염지역에서 떨어져 도망치거나 일부러 다른 이용자에게 전염을 일으키려고 하는 이용자, 일반 물약을 치료제로 속여 팔아넘기려는 ‘사기꾼’도 나왔다.
블리자드 직원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감염자 격리 조치를 통한 ‘방역’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관련 논문에 따르면, 이 전략은 오염된 피의 전염성이 너무 높은데다가, 게임의 한 지역을 전부 막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질병의 전염성이 매우 높고, 이용자가 저항하면서 실패했다.
결국 회사는 게임 서버를 리셋하고, 게임을 업데이트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게임 이용자에게는 단순히 불편함을 끼친 사건이었으나, 전염병 학자나 테러리즘 방지 기관 등이 이 사건에 대해 ‘질병 기원·제어 사례’로 관심을 두고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워싱턴 주립 대학의 에릭 로프그렌(Eric Lofgren) 박사다. 그는 WoW의 오염된 피 사건을 미래 전염병을 모델링할 수 있는 도구로 간주하고, 2007년 이에 대한 논문을 작성했다.
로프그렌 박사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전염병이 미국 의료 시스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20년 3월, 피시게이머와의 인터뷰에서 "오염된 피 사건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게임에서처럼 일부러 전염병을 퍼뜨리는 사람은 현실에 없을 수도 있지만, 전염병의 위험성을 고의로 무시하는 것은 이와 비슷한 행위다"라며 "전염병이 별것 아니라며 연로한 할머니를 보러 가거나, 콘서트장에 가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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