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가 TV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생산을 연장해달라는 삼성전자의 SOS에 응답했다. LCD 생산 연장이 삼성디스플레이의 수익 개선에 도움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형님’ 격인 삼성전자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여서다.

28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에 LCD 생산을 1년 더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에 삼성디스플레이는 제안을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1년 더 LCD 생산 연장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삼성디스플레이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사실상 확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전경 /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전경 / 삼성디스플레이
삼성디스플레이는 당초 LCD 생산 종료 시점을 새해 3월로 잡았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대형 LCD 패널 중 3분의1쯤을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공급받았지만, 중국 BOE·CSOT나 대만 AUO 등 중화권 업체로부터 공급을 늘릴 수 있어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 LCD 시장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요 증가와 주요 부품사의 사고가 이어지는 등 변수로 인해 호황을 맞았다. 시장조사업체 위츠뷰에 따르면 7월 이후 32인치 LCD 패널 가격은 82%, 43·55인치 패널도 각각 58%, 56% 급등했다. 대형 LCD 패널은 중국 업체의 가격 인상으로 최대 70% 올랐다. LCD 패널 가격 상승세는 새해 내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중화권 패널 업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사업에서 완전 철수해 자신들이 LCD 패널 가격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만 오길 바라고 있다"며 "삼성디스플레이를 향한 생산 연장 요청은 중화권 업체와 가격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전자·디스플레이 업계는 삼성전자의 LCD 패널 수요가 존재하고, LCD 시장에서 중화권 업체의 독점적 지위가 지속하는 한 삼성디스플레이가 LCD 생산을 완전히 종료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한다. 새해뿐만 아니라 2022년에도 아산 8라인(L8)에서 LCD 생산이 연장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CD 생산 연장에 대한 협의는 연단위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며 "조만간 고위급 선에서 양사간 LCD 공급에 대한 방향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도 "생산 연장 여부는 LCD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회사이익을 우선고려해 결정할 것이다"며 "시기를 특정해 얘기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의 LCD를 절실히 원하는 것은 미니LED TV의 안정적 생산과 수익성 확보 차원에 따른 이유도 있다. 미니LED는 미니LED BLU를 발광원(백라이트유닛)으로 활용한 LCD TV다. 마이크로LED, QLED TV와 함께 삼성전자 새해 TV 라인업의 한축이다.

삼성전자는 미니LED TV에 쓰일 LCD 패널을 중국 BOE와 AUO로부터 공급받을 예정이었지만, 현재로선 삼성디스플레이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사실상 새해 TV 사업의 성패가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공급 여부에 달린 셈이다.

반면 삼성디스플레이 내부에서는 삼성전자의 사정 때문에 희생을 강요당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LCD 단가 상승세가 지속됨에도 삼성전자에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하는 이상 수익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새해 미니LED TV 등 신제품 생산을 위해 삼성디스플레이의 LCD 패널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부품 보다는 세트 제품의 성과를 돋보이고 싶어하는 그룹의 판단에 따라 삼성디스플레이 입장에서 희생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