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Q 인터뷰]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 이선외 시인

입력 2020.12.31 11:13 | 수정 2021.01.04 12:26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 이 시집은

독특한 시집이 있다. 이 시집의 시를 얼핏 읽으면 시인지 독백인지 독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두번 세번 읽으면 시에서 조금씩 감정이 우러나온다. 그 감정마저 기존 시와는 사뭇 색다르다. 시집을 몇 번 더 읽으면 시인이 속에 숨긴 의미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오래 눌린 마음을 단숨에 외치듯, 홀가분한 마음에 크게 소리를 지르듯, 독설 아래에 따뜻한 위로의 말을 숨겨 건네듯, 상상을 현실로 빚어올리려 하듯, 세상을 자신의 시어로 발가벗기고 거침없이 재단하듯. 갖가지 매력이 담긴 덕분에 이 시집은 쉬이 덮을 수 없다.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 / 천년의시작
이 매력적인 시집,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의 이선외 시인은 초현실주의를 노래한다. 난해한 탓에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새로운, 혹은 지금껏 숨겨진 문학의 세계에 아주 깊고 가까이 다가간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초현실주의가 시와 만났다. 좀처럼 겪기 힘든 경험이다.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 시집을 지은 이선외 시인을 만나 다섯가지 질문을 던졌다.

Q1. 형식, 내용, 심상 면에서 정말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초현실주의의 매력 혹은 마력은 무엇일까요?

-반항하는 재미가 있었다. 기존의 가치관에 질문을 던지고 반항하는 여지가 있어서 좋았다.

초현실주의의 매력은 아주 새롭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기존 한국 서정시에서 위로, 공감을 적게 받았다. 교과서적으로 시를 알고 배운 탓도 있겠다. 이 때 초현실주의 시를 만났는데, 내가 몰랐던 세계의 비밀을 탐구하는 탐구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2. 그렇더라도, 초현실주의 문학은 선뜻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작품을 더 쉽게 읽고 느끼는 방법을 귀뜸해주세요.

-자동 기술법이 있다.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프로이드 박사가 환자를 볼 때, 환자가 마음에 맺힌 것을 마음껏 이야기하도록 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초현실주의는 이를 문학적으로 원용한다. 내 시에도 이런 부분이 있다. 자동기술법은 우리나라 독자, 작가에게는 낯선 개념이다. 이를테면, 무당이 신탁을, 신내림 받았을 때처럼 무의식 속 욕망을 분출한다고 보면 된다. 개인이 영적인 부분을 느끼는 것과도 같겠다.

원거리 영상을 병치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출처가 전혀 다른 이미지 두개를 붙여 생각해보라. 최근 ‘노을의 척후’라는 시를 읽었다. ‘노을’은 자연에서 저녁마다 보는 풍경이다. 여기에 군사적인 단어인 ‘척후’가 붙었다. 영역이 다른 두 낱말의 이미지가 겹치니 시적인 효과가 배가됐다. 이를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원래 단어의 자리를 다른 장소로 옮기는 이미지 병치법이라고 한다.

도발적인 방법은, 전위적인 문법을 버리는 것이다. 문장을 비튼다고 표현한다. 평론가는 시가 문장을 비틀면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나는 기존의 문법을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가져오고 싶다. 한 문장에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화가들은 초현실주의 시를 쉽게 이해한다. 순전히 시를 이미지로 봐서다. 시나 문장을 읽을 때 시인의 생각, 주제 등을 생각한다. 화가나 미술가는 이를 이미지로 파악하고, 주제는 스스로 정한다. 이 방법도 추천한다. 비주얼 시대 아닌가.

락 음악, 랩으로도 접해보라. 출판기념회때, 한 지인이 내 시로 랩을 했다고 한다. 호평 받았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연히 내게 다가온 내적인 고백은 통제하기 어려운 흐름을 탄다. 읽을 때 숨소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시를 랩으로 읽어도 좋겠다.

Q3. 난해해 보이지만, 천천히 소리내서 읊으면 갖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애착을 가진 시를 소개해주세요.

-시집 맨 처음에 실은 ‘형제에게’라는 시가 있다. 내 시는 여성적인 목소리로 세상에 발언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우선 이 시를 내세워 첫 운을 떼고 싶었다. 시집을 열자마자 이 시를 읽은 많은 분들이 공감하더라.

‘무녀가 되고파’는 내가 시를 쓸 때 어떤 느낌에 사로잡혔는지, 어떤 기운을 가지고 시를 쓰는지를 읊었다. 이 두 시는 읽기 쉽고, 공감의 폭이 큰 시다.

내 시가 정말 어렵다는 분이 있었다. 이 분이 연애시를 찾길래 ‘오지 않은 사람’을 권했다.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 일종의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라는 단어 없이 연애시를 읊었다. 이 시를 읽은 지인이 재미있다고 하더라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는 표제작이다. 이 시는 시리즈로 쓸 수도 있을 듯하다. ‘연습곡’이라는 시는 난해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우리 말의 문장을 잘게 잘라, 단어의 ‘샐러드’로 만들었다. 이 샐러드를 먹고 내가 토해낸 시로 보면 된다. 시 형태가 독특한 덕분에 애착이 간다.

Q4. 이선외 시인이 그리는 시의 세계, 앞으로의 작품 활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내 첫 시집이다. 초현실주의의 매력에 빠져 너무 급하게 들어간 감이 있다. 두번째 시집은 천천히 걸으며, 동료와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다. 더 쉽고 재미있는 시를 쓰고 싶다. 초현실주의의 미학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 호흡을 천천히, 여러 명이 끌고 가면서 미학을 더 확실히 구현할 수 있는, 본격적인 시를 쓰고 싶다.

사실, 초현실주의자는 자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이를 싫어한다. 욕심이 많으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너무 많은 시집을 내는 것도 싫다. 평생 시집을 두권만 쓸까 생각했는데, 이미 한권을 썼다. 앞으로 한두권만 더 쓸 생각이다.

Q5. 시인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한 마디를 주신다면?

-시 이전에 자기만의 세계를 가져라. 자기만의 세계를 탐구하면 이것이 시, 영화, 소설이 될 수 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게 먼저다. 시를 쓰고 싶다면, 그 다음에 다른 이의 시를 읽어라. 보통은 거꾸로 말한다. 다른 이의 시를 읽고 필사하며 시를 공부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풍부한 교양,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살다가 시를 잡는 것이다. 그래야 독창적인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권의 시집을 내더라도 의미있는 시집을 낼 수 있다.

사실, 시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생계를 유지할 만한 기술을 가져야 한다. 그럼 더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있다. 시를 쓰려면 정신과 몸이 자유로워야 한다.
‘우리가 뿔을 가졌을 때’ 이선외 시인 5Q 인터뷰 / 촬영·편집 차주경 기자
저자 이선외는

1978년~1984년 한국초현실주의문학예술연구회 ‘雅屍體(아시체)’ 동인으로 활동하다, 1983년 조향 시인의 추천,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초현실주의 미학을 표현 양식으로 독자적인 시적 성취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체제에 대한 환멸과 부정으로부터 시작한 이번 시집은 다른 시집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독백하는 듯한, 알쏭달쏭한 시어를 잘 헤집어보면 예리하고 은밀한 함의가 숨어 있다.

노혜경 시인은 이선외 시인을 ‘전설의 뿔 달린 동물을 언어로 불러내고야 말겠다는 이’로 소개한다. 서길헌 조형예술학 박사 또한 이선외 시인의 시를 ‘무의식에 기반한 자동기술에 의지해, 거침없는 진술로 허황된 세계의 기반을 들춰내는 시인의 신탁’으로 소개한다.

books@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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