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지난해 12월 24일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법·제도·규제 정비 로드맵을 공개하고 AI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계와 업계에서는 과기부의 이런 행보가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AI 고도화의 핵심 기반인 데이터 확보도 어려운 시점에서 법인격 논의에 행정력을 쓰는 게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수준 낮은 AI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기반 생태계 조성에 더 집중할 때라는 말이다.

 / 아이클릭아트
/ 아이클릭아트
과기정통부, 인공지능에 법인격 부여 검토

과기정통부는 미래 인공지능의 민·형사상 책임 소재가 발생하거나, 창작물 생성 시 주체 인정 여부에 관한 법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업계·학계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현재 국내 인공지능 수준은 인간이 하는 단순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자동화 시스템 수준에 머물러 있어 기술 고도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가 운영하는 인공지능 법제정비단에 참여하고 있는 고학수 서울대 로스쿨 교수(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는 "정부 정책이나 법제도로 당장 고민해야 할 사안이 있고, 중장기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 있다"며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논의할 주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장 시급한 것은 인공지능 산업과 법 제도 사이 간극을 좁히는 일이다"며 "법학자는 AI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AI 산업 관계자는 법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간극을 메워 현실적인 논의를 이어가는 게 급선무다"라고 지적했다.

이학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산업공학과)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추세를 고려하면, 창작물 권리주체 인정 논의는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민·형사상 법인격 관련 논의는 시기상조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발전할 수 있는 생태계 마련이 급선무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발전을 위한 기반 생태계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AI 기반 자연어처리 전문 기업 포티투마루의 김동환 대표 "현재 인공지능을 활용해 결과를 내고는 있지만, 왜 이런 결과에 도달했는지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다. 법적 책임을 따지려면 과정을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설명 가능한 인공지능(XAI) 기술이 부족하다"며 "제도와 체계를 정비하려면 사회적 공론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도 필요하다. 충분한 토론 과정과 면밀한 법리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패션 AI 기업 오드컨셉의 김정태 대표는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정의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으로, 이를 구체화하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며 "너도나도 AI라 칭하는 상황에서 과대해석을 막을 방안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오정익 법무법인 원 인공지능사업팀 변호사는 "현재 국내 인공지능의 기술단계나 사업 진행 수준에 비추어 보면, 법인격 부여와 관련된 법제화 등의 계획은 다소 이른 감이 있다"며 "오히려 AI 기업은 개인정보보호법 등 권리 충돌의 문제와 관련한 현행 법률 보완을 호소한다. 이 마저도 각계각층의 이해관계 대립으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최근 로드맵을 통해 밝힌 것처럼 2023년까지 2년간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 과제를 수행할 것이다"며 "해당 시점까지 법안 개정은 어렵겠지만, 제도 정비를 위한 작업 검토는 지속해서 추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