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합성평가 위조 적발했으나 처리 ‘지지부진’
청문 끝나야 행정처분 내릴 수 있어
더딘 청문회 진행에 소비자 피해 우려도

위조된 시험성적서로 방송통신기자재 적합성평가를 받은 업체들의 청문절차 진행이 더디다는 지적을 받는다. 청문이 늦어질수록 적정 적합성평가를 받지 않은 제품을 소비자가 계속 사용하게 된다. 잘못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문제가 된 제품을 수거해 폐기하는 행정처분을 내리려면 지난해 11월 적발된 381개 업체에 대한 청문 절차를 모두 끝내야 한다. 정부 발표 두달이 지났지만 제자리걸음 중이다.

과기정통부 세종 청사 / IT조선
과기정통부 세종 청사 / IT조선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0년 11월 위조 사례를 적발한 381개 업체 중 현재까지 청문 절차를 밟은 기업은 단 3곳 뿐이다.

과기정통부는 시험성적서 발급기관이 미국 소재의 BACL로 표기된 시험성적서 중 일부가 실제로는 중국에 있는 BACL에서 시험·발급된 정황을 제보받아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381개 업체의 적합성평가에 이용된 총 1700건의 시험성적서가 미국 소재의 BACL에서 발급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381개 업체에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과 중국 유명 드론업체 DJI 등 다양한 기업이 포함됐다. 주요 제품으로는 통신장비 등 큰 규모의 제품이 있는가 하면, 무선 스피커나 무선이어폰, PC 주변기기 등 소비자가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기자재도 상당수 있다.

과기정통부는 관계 법령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조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가로 막힌 상황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12월 초부터 청문 절차를 시작하려 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며 일정이 연기됐다"며 "청문에는 청문주재자, 청문당사자, 행정청, 국립전파연구원, 참고인(법률자문, 기술자문), 법률 대리인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야 하다보니 코로나19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을 구분하고, 온라인 영상회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다보니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1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청문절차를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 장관은 전파법령에 따라 시험성적서 위조 등 부정한 방법으로 적합성 평가를 받은 경우 해당 기자재에 대해 적합성 평가의 취소 및 수거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위조된 시험성적서와 적법하게 발급된 시험성적서 비교/ 과기정통부
위조된 시험성적서와 적법하게 발급된 시험성적서 비교/ 과기정통부
문제는 이러한 처분을 하려면 청문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381개 업체를 모두 진행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2020년 11월 브리핑 당시 청문절차가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연내 마무리 할 수 있을지 조차 예측이 어렵다. 늦춰진 청문 절차 여파로 자칫 소비자 피해가 생길 수 있다.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한 셈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거나 자체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기자재들은 직권으로 시험을 진행 중이다"며 "다만, 청문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아직 청문을 하지 않은 기업들과 진행한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중간에 일부 기업에만 처분을 내리거나 청문 절차 내용을 공개하는 등 조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