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韓·美 헬스케어 격차 더 벌렸다

입력 2021.01.14 06:00

미국 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반면 우리나라는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자와 특수한 의료시스템, 저수가 문제 등에 가로막혀 산업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된다.

/픽사베이
디지털 헬스케어는 보건의료와 ICT 기술 융합으로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산업이다. 기존에는 당뇨와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뿐 아니라 신약 개발이 어려운 뇌신경계, 약물 중독 분야에서 효용성을 보이면서 각광받았지만, 코로나19로 최근에는 일반인 건강 관리에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정부만 힘 보태면 굴러는 갈텐데"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성장 가능성에 관심이 높아진다. 이를 이유로 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들이 우후죽순 등장한다.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부터 VR 시술 인프라 제공 업체, 명상앱 개발사, 원격진료 앱 개발사 등은 물론 코로나19로 개인 건강 관리와 정신 건강 분야가 각광받으면서 비대면 운동 코칭 플랫폼 업체와 정신 건강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도 나왔다.

투자도 이어진다. 2016년 설립된 국내 유일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투자사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는 현재까지 21개의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 중에는 명상앱 ‘마보’와 원격진료앱 ‘메디히어’, 인공지능 유전체 분석 회사 ‘쓰리빌리언’, 비대면 운동 코칭 플랫폼 ‘라피티’, 정신 건강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 ‘블루시그넘’도 있다.

세계적인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헬스케어 산업에 도전장을 내미는 기업은 꾸준히 증가하지만 관련업계는 국내 시장의 빠른 성장에는 의문을 표한다. 미국만큼의 성장세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의료계 이해관계자와의 관계, 의료시스템, 저수가 문제 등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 유일한 주체인 정부의 역할이 충분치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수 년째 한 발짝도 앞서나가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안에서 ‘남들이 로켓을 타고 날아갈 때 한국은 마차를 타고 달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역할을 문제로 꼬집는다. 사회적 합의를 한데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기업이나 의사가 아닌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라며 "의료계 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 정부가 나서지 않는다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디지털 헬스케어 효용성 입증’ 외에 기업단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대표는 "의료 시스템과 산업적인 환경 등이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진화 중이다"라며 "이에 반해 한국은 아무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몇년 째 공회전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의 개선과 사회적 합의의 도출이 필수적이라는 게 최 대표의 입장이다. 그는 "현재 정책 방향성이 혁신 성장과 산업 성장이라면, 그에 맞게 정부에서 규제를 혁신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 같은 선진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코로나19에 힘받는 美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한국에 반해 미국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코로나19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투자사 락헬스(Rock Health)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투자금은 2013년 대비 10배 이상 오른 140억달러(약 15조 4000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한해에만 총 총 440건의 거래(deal)가 성사됐다. 투자 건수와 건당 투자 규모 등이 모두 기록을 갱신한 셈이다.

투자금이 몰리자 미국 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인프라도 성숙해진다. 개별 기업이 자체 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하던 과거와 달리 미국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SI(System Integration) 업체가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포브스로부터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으로 꼽힌 미국 트루필(TruePill)은 기존 약국에 원격으로 의약품 처방전을 내리는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주목 받는다. 또 전자의무기록(EMR) 회사 간 환자 데이터 교환을 가능케 연결시키는 업체와 환자 데이터를 수집·정리해 연구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대기업도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를 속속 내놓는다. 필립스는 CES 2021에서 인공지능(AI)과 필립스 센스IQ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칫솔 ‘소니케어 9900 프레스티지’를 선보였다. 센스IQ 기술은 개개인별 구강 관리 습관을 감지해 소비자의 양치 행위를 자동으로 조정한다.

필립스에서 퍼스널 헬스케어 부서 비즈니스 리더를 맡고 있는 딥타 카나 임원은 CES 2021에서 "코로나19로 대부분 국가에서 치과 검진이 중단됐다"며 "소비자가 치과에 가지 않고 앱과 제품을 연동해 가정에서 구강 건강을 관리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게 됐다"고 소개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활발한 투자를 집행하는 ‘플래어 캐피탈 파트너스’의 마이클 그릴리 공동 창업자는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된다고 해서 원격진료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코로나19로 대중이 다른 방식으로도 의료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대중은 항상 경험보다 나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만큼, 관련 시장도 무궁무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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