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보다는 ‘실리’ 챙기기 위한 결단
철수설 IT조선 보도 하루 후 이메일 입장

전장사업에서 빛을 본 LG전자가 ‘아픈 손가락’인 스마트폰 사업에 마침내 칼을 댄다.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온 우울한 생존기에 마침표를 찍기 위함이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비중을 늘려 생산을 최대한 효율화 하거나, 사업부를 통째로 매각하는 방안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 지원에 대한 고용은 이어간다.

LG전자는 20일 권봉석 사장이 MC사업본부 구성원에게 보낸 이메일을 공개하며 스마트폰 사업 철수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라는 판단에서다. LG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내용이다.

IT조선은 19일 ‘LG 스마트폰 사업 철수 전망 잇달아’ 기사를 통해 LG전자가 연평균 9000억원에 달하는 적자 부담을 고려해 스마트폰 시장 철수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는데, 하루 만에 권 사장이 사업부 관련 입장을 내놨다.

권 사장은 "MC사업본부의 사업 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 할 필요없다"고 강조했다.

권봉석 LG전자 사장 / LG
권봉석 LG전자 사장 / LG
전자업계는 권 사장이 축소와 매각 등 사실상의 사업철수를 뜻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평가한다. CES 2021에서 예고한 롤러블폰 출시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LG전자 내부에서는 스마트폰 사업정리가 불명예스러운 적자 이미지를 탈피하고 경영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순기능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사업운영 방향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리 수순으로 간다면 매분기 핵심부서의 사업 적자를 고민해야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스마트폰 R&D 인력이 그대로 있는 한 가전, 전장 등 부서와 협업은 그대로 이어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IT업계와 증권가에서는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정리에 나섰다는 루머가 퍼졌다. LG전자는 루머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둔 전망이 속속 나왔고 결국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모바일 업계 관계자는 "LG전자가 MC 사업본부를 매각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일각에서는 미국 업체가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엔지니어 단계에서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된 상태에서 LG 롤러블로 기업 가치를 높여서 매각 협상 때 유리한 조건을 만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 이래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왔다. 2020년 말까지 누적 영업적자는 5조원 규모다.

LG전자는 적자 장기화에도 사물인터넷(IoT) 시대 컨트롤러 역할을 하는 핵심 기기인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실적을 견인하고 있는 가전(H&A)사업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스마트폰 판매량이 급감했고, 최근 신작의 실패 등 부진한 사업실적표를 받아든 LG전자가 사업 정리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2020년 하반기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로 야심차게 내놓은 이형 폼팩터폰 ‘LG 윙’ 판매량은 10만대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최근 4000명 규모의 MC 사업본부를 개편하며 핵심 부서를 없애는 등 체질 개선에 이미 돌입했다. 국내 생산 공장은 중국과 브라질, 베트남 등 해외로 모두 이전했다. 저가 스마트폰은 자체 생산 대신 제품 설계에서 부품 수급까지 발주하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비중을 늘렸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서 ODM 비중을 70% 이상 늘렸다.

LG전자는 조만간 사업정리 또는 매각 등 사업방향을 결정한다. 구체적 방향이 정해지면 구광모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에서 사업 전략의 변화도 고민할 예정이다.

LG전자 고위 관계자는 "권 사장이 CEO로서 관련 인력의 고용 유지 의사를 밝혔고 향후 사업 운영방향이 결정되면 그룹 차원에서 큰그림을 상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