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 원격의료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자리를 잡는 모양새다. 미국만 해도 문자 기반 심리 상담 서비스 업체가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다. 특정 보험사는 원격의료 보험 서비스를 영구 지원키로 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이다. 원격의료 전면 금지 기조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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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꽃 피운 원격의료

22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이 발표한 글로벌보건산업동향에 따르면 미국 원격의료 이용률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4300% 성장했다. 기술적 개념에만 머무르던 원격의료가 실생활에 정착한 덕이다.

우선 미국의 대표적인 모바일 심리 상담 서비스 토크스페이스(Talkspace)는 5만명에 가까운 활성 사용자를 끌어 모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생긴 우울감과 무기력증 등 정신건강 돌봄 수요를 디지털 헬스케어가 매웠다. 토크스페이스는 사용자가 모바일 앱을 통해 전문 치료사와 매칭돼 문자 등으로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재는 인기에 힘입어 나스닥 상장을 계획한다.

원격의료 실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미국 보험사들은 관련 건강보험 적용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미 영구적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선언한 곳도 있다. 블루크로스 블루쉴드(BlueCross BlueShield of Tennessee)는 보험사 중 최초로 코로나19 이후에도 원격의료 서비스에 건강보험 적용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미국 최대 원격의료 업체 텔레닥의 제이슨 고레비치 대표를 비롯한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CES에서 "원격의료는 감염 우려로 대면 진료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체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며 "코로나19 유행이 지난 후에도 원격의료 활용 사례는 줄어들지 않고 만성질환과 정신질환 등 분야에서 꾸준히 활용될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규제·이해관계자 마음 돌리면 韓 의료기술 수출 가능"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의료행위가 의료기관 내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불법으로 규정하는 꽉 막힌 규제와 이해관계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업계는 아쉬움을 내비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력을 수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의료계 한 관계자는 "의료 서비스에 있어 보수적인 국가로 평가되는 일본 조차도 점진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했다"며 "의료기술력 측면에서 더 뛰어난 우리나라가 원격의료를 시행하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더 빠르게 의료기술력을 세계로 수출하면서 산업 성장을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언 가천길대학병원 교수 겸 규제개혁당당하게 공동대표도 최근 성명을 내고 "세계 의료계에선 비대면 진료가 속속 도입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라며 "뉴노멀 시대에 지속가능한 국가의료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의료계는 오진 가능성 등을 이유로 원격의료를 반대한다"며 "미국에서 3000건의 원격의료 성과를 평가한 결과, 안전하다는 연구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원격의료는 의학산업 측면에서 정부가 적극 육성해야할 차세대 산업이다"라며 "향후 5년간 원격의료 시장은 연평균 9.2%씩 성장할텐데,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면 산업에서 가장 뒤처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