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언택트 산업이 단번에 시장 메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변화의 흐름은 올해도 이어진다. 백신이 등장했지만 팬데믹이 몰고 온 변화는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변화의 흐름을 잘 타면 기업에는 도약의 기회가 된다. IT조선은 올 한 해 우리 산업계 변화를 이끌 10대 기술을 찾아, 매주 월·목 2회씩 5주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실감콘텐츠(Immersive Content)란 인간의 오감을 극대화해 실제와 유사한 경험을 제공하는 차세대 콘텐츠를 말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부터 넓게 보면 프로젝션 맵핑, 인터랙티브 미디어, 홀로그램 등도 이에 포함된다.

실감콘텐츠는 모든 산업의 근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자 활용될 영역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뿐 아니라 국방, 재난, 안전,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는 물론 제조, 농업, 도시, 미디어 등 산업과 과학기술 등 전 분야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 올해 2024억원의 산업 육성 정책을 펼치는 이유다. 기업 역시 실감콘텐츠를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인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은 2017년 약 33조원에서 2023년 411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오큘러스 퀘스트2 이미지 / 페이스북
오큘러스 퀘스트2 이미지 / 페이스북
"콘텐츠는 한국이 세계 최고"

관련업계는 우리나라가 실감 콘텐츠 산업 발전의 좋은 토대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한다. 콘텐츠와 플랫폼, 네트워크와 하드웨어 등 실감형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를 대부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 업계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중견·중소기업에 다니던 게임 업계 기술자가 VR 업계로 다수 유입된 것도 이유다.

김동현 한국가상현실콘텐츠산업협회장은 "한국 콘텐츠 제작력과 서버 기술력은 세계에서 가장 으뜸이다"라며 "이를 활용해 VR 플랫폼 속 ‘가상현실’ 속 신대륙을 발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대면’이 뜨는 2021년이 중요하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한국이 IMF를 극복하고 IT강국으로 우뚝 섰듯, 코로나를 극복해 비대면 강국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뉴메틱의 VR 관광게임 ‘엘리네 여행일기’는 미니어처로 표현한 수도권의 랜드마크를 관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담아 코로나 시대에 해외여행을 갈망하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용자는 인천공항에서 여정을 시작해 지하철을 타고다니며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정조대왕능 행차나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 같은 전통문화는 물론, 한강 공원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농구 게임을 즐기는 등 다양한 나들이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브래니의 쿠링 메카디노의 습격은 온가족이 함께 키즈카페나 유원지를 방문한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이용자는 VR세계 속 원더랜드를 탐험하면서 슈팅, 음악, 디펜스, 클라이밍, 캐치업,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미니게임을 즐길 수 있다.

신의진 교수(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는 "다른 사람, 바깥 세상과 접촉이 없어질 때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며 "VR 콘텐츠는 실제는 아니지만 뇌에 새롭고 흥미로운 자극을 주는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주면서 해서 혼자 있을 때 쌓이는 부정적 감정을 막고,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플랫폼 부재가 생태계 악순환 고리로 연결

다만 관련업계는 실감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하드웨어와 플랫폼이 부재하다는 점을 이유로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콘텐츠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고 안타까워 한다.

김동현 협회장은 "한국이 플랫폼, 기기에 뒤늦게 뛰어들기는 어렵다. 콘텐츠 분야를 공략해야 한다"며 "해외 기술이 인프라를 받치는 상황에서 한국은 그곳을 놀이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VR 기기다. VR은 HMD(Head Mounted Display)라고 부르는 헤드셋과 컨트롤러를 함께 사용한다. 이를 통해 헬스케어, 교육, 게임, 산업 등 다양한 분야의 VR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기어VR과 오디세이플러스 등을 출시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VR플랫폼인 삼성XR의 서비스를 종료하기도 했다. 이는 VR 기기 시장의 표준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VR 기기의 가격이 비싸거나, 설치가 번거로워 대중보다는 ‘얼리어답터’를 위주로만 시장이 형성되면서 하드웨어 개발 이유가 점점 힘을 잃었다.

플랫폼도 부재다. 유력 VR 기기를 보유한 기업은 자사 기기에 맞는 플랫폼을 함께 운영한다. 소니와 페이스북, HTC는 모두 자사 스토어에서 콘텐츠를 공급한다. 이탓에 마치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가 득세하는 것처럼 소규모 플랫폼 대신 대형 플랫폼으로 콘텐츠가 몰리는 현상은 점점 심해진다.

우리나라는 SK텔레콤이 2일부터 페이스북과 손잡고 오큘러스 퀘스트를 한국에 출시하긴 했지만, 한국 만의 플랫폼, 장비는 여전히 없다. 정휘영 브래니 대표는 "원천기술이 없어 해외 사업자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국만의 장비, 플랫폼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이 없다는 점은 한국 콘텐츠 사업자가 해외 플랫폼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결제 수단을 붙이거나 마케팅을 진행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연결된다. 또 신기술을 활용한 경우, 플랫폼 호환성 측면에서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다.

VR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과제로 완성한 작품 중에서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융복합 콘텐츠도 있는데, 이는 주요 플랫폼에 올릴 수가 없다"며 "각종 DB나 프로토콜 설정을 플랫폼에서 함께 맞춰줘야 하는데, 이런 것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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