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가벼운 현대차에 분노한 애플’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다. 블룸버그통신의 보도를 전하는 형식이다. 블룸버그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하며 애플과 현대의 전기차 생산 논의가 최근 중단(pause)됐다고 보도했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애플과의 협의 내용을 간접적으로 시인했고, 이 같은 일이 애플과의 협의를 뒤틀리게 했다"고 전했다.
다른 언론에서는 현대차의 30억달러 투자, 최대 10만대 조립, 일본 6개업체와도 협의 진행 등의 기사가 퍼지기도 했다. ‘애플카를 믿고 개미들이 현대기아차에 1.8조원이나 투자했는데 어쩌나’ 하는 기사도 이어졌다. 드디어 현대기아차의 ‘애플과의 자율자동차 개발 협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공시로 시가총액이 13조원이나 사라졌다.
당사자 외에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가 없으나 일련의 사태는 여러 가지 해석을 낳게 한다. 애초에 아무 협의가 없었는데 풍문이었을 수 있으나 현대차의 몇 차례의 언질에 의하면 뭔가 협상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플과의 협력이 좋은 일이긴 하지만 현대차의 독자 노선과 병행할 수 있을지, 애플이 현대와 협력하면서 또 경쟁 관계를 허용할지, 아니면 현대차는 독자 노선은 포기한 건지 생각이 복잡해진다. 현대가 독자 노선을 포기했다면 씁쓸한 일이고 아니라면 협상이 간단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애플이 분노했다는 기사에 의하면 애플이 협상을 파기(Deal Break) 시키거나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명분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협상의 재개 여부에 대해서는 외부에서는 알 수가 없으나 어찌되었든 보안(confidentiality, non-disclosure)이 빌미가 된 것이다.
서구, 특히 미국의 기업들하고 여러 가지 사업적 행위를 할 때 문화적으로 차이를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 NDA(Non-Disclosure Agreement)이다. 회의, 프리젠테이션, 거래협상, 기술토의, 계약협상 등 거의 모든 행위 이전에 NDA를 요구한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심지어 자신들의 제품과 기술을 팔기 위한 회의에서도 여지없이 요구한다. 반면에 우리는 보안에 너무 의식이 없고 허술하기도 하다. 경험상 보안에 철두철미한 애플이 한국적 문화에 불편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한번은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을 대동해 벤처기업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이다. 참석자 중에서 기술 소개 회의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다 상대방에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쫓겨날 뻔한 수모를 겪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기술자료를 배포하는 일에 무감각한 우리한테는 NDA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공동과제(Project), 합작회사설립(JV), M&A 등에 대해서도 완료되어 대외적인 발표 내용과 절차에 합의하기 전 까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심지어는 담당자를 제외한 내부 직원들에게 조차도 극비에 부쳐지기 마련이다. 상장기업의 경우에는 더더욱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속 미국 기업이 인수 합병된 경험이 두 번 있는데, 두 번 모두 언론에 발표되고 나서 합병 사실을 알게 되어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자리를 포함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혼돈에 빠진 적이 있다.
우리의 경우에는 내부에, 시장에, 언론에 비밀 아닌 비밀로 소문이 떠돌아 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뿐 아니라 정부의 여러 극비사항, 검찰의 수사 사항들이 노출되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보안(confidentiality)에 허술한 것이다.
허술한 보안 의식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기회를 박탈하는지 인식해야 한다. 현대차와 애플의 협상 자체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원하던 기회가 가벼운 입 때문에 날라간 거라면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하고 심할 정도의 서구 기업들의 보안에 대한 요구(NDA)를 우리 기업 문화에 내재시켜야 한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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