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이 책은

‘돌 틈새에서 파릇한 햇살들이 놀라 깨어나면, 나는 조그맣고 서러운 사랑으로 눈 뜨리(풀잎)’
‘너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다 이 말은 너무 작았다. 그래서 너를 두곤 목숨을 내걸었다(목숨의 노래)’
‘땅 위에 제일 평화롭고 뜨거운 대답, "응"(응)’

어떤 시는, 읽기만 하면 저절로 머리 속에 심상과 그림이 그려지게 한다. 그런 시는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또 부풀게 한다. 어떤 글씨는, 보기만 하면 저절로 머리 속에 글의 형상이 몽글몽글 맺히게 한다. 그런 글씨는 사람의 뇌리에 박혀 되뇌일 때마다 형상을 떠오르게끔 한다.

읽을 수록 아름다운 시와 볼 수록 아름다운 글씨가 만났다. 한국에서 드물게 이뤄진 협업, 문정희 시인과 강병인 작가가 함께 만든 시집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 파람북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 파람북
이 시집은 경이롭다. 시를 읽으면 사랑의 따뜻한 느낌이, 글씨를 보면 명확히 구체화된 강렬한 느낌이 온 몸을 휘감는다. 시집을 펴고 읽을 때마다 마치 시와 글씨가 맥동하는 듯하다. 시와 글씨가 어우러져 새 생명을 낳는다.

강병인 작가는 문정희 시인의 시를 두고 ‘한 대목을 뚝 떼어놓으면 그것이 또 하나의 시가 된다. 한 줄의 시구에서 열 편의 시를 읽었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시에 강한 에너지와 심상이 담겼다는 의미이리라.

시집,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에서 시를 쓴 문정희 시인을 만나 다섯가지 질문을 던졌다.

Q1. 처음 시인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를 되뇌어 설명해주세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면 재미있었다. 칭찬도 많이 받았다. 한 점 후회나 의심 없이 시를 쓰고 있다. 시인이 참 좋다.

Q2. 강병인 작가와 함께 만든, 글씨와 시가 어우러진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시·글씨와 그 이유는?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응 등의 시가 인상적이었다. 한국 최고의 글씨 예술가 강병인 작가가 내 시를 심사숙고해 글씨로 쓴 것만으로 호강한 기분이다. 출판사 파람북(대표가 시인이기도 하다)에게도 감사한다.

Q3. 50년간 쌓아올린 시 세계, 앞으로 시인께서 쌓을 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려운 질문이다. 50년간 치열하게, 후회없이 시를 썼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그동안 경험을 쌓고, 시도와 실패를 여러 차례 겪은 시인의 세계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고민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사뭇 달라질 예술의 세계도 궁리 중이다. 나는 아직 젊다. 앞으로는 내 문학의 세계를 완성하는 후반기가 될 것이다.

Q4. 코로나19 바이러스 창궐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할, 문 시인님의 시를 한 편 소개해주세요.

-위로는 문학에서 어려운 주제다. 문학의 위로는 말뿐인 위로와 다르다. 위로하는 시 한두편을 읽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언어로 내면을 투시할 수 있는 냉정한 힘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사랑해야 하는 이유’, ‘이 가을에’, ‘고독’, ‘비의 사랑’ 등을 권하고 싶다.

Q5. 시인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한 마디 부탁합니다.

-시가 아름다운 것, 갖고 있으면 좋은 것으로 보는 생각은 관념적이다. 시를 쓰고 싶다면 시의 재료, 언어를 많이 모아 풍성하게 만들라. 그리고 이 재료를 꺼내 쓰는데 주저하지 말라. 시를 많이 읽자. 시를 쓰는 기술만 배우지 말고, 시의 호기심과 창조력을 표현할 언어의 능력을 키우자.

※더 많은 인터뷰 내용을 아래 영상 인터뷰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5Q 인터뷰] '’ 문정희 시인 5Q 인터뷰 / 촬영·편집 차주경 기자

시인 문정희는

30여분간의 인터뷰, 그 짧은 시간에도 문정희 시인의 따뜻한 목소리 속 굳은 메시지며 시어를 느낄 수 있었다. 1969년 등단한 문정희 시인이 50년간 낸 시집 ‘새떼’,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오라, 거짓 사랑아’, ‘카르마의 바다’, ‘사랑의 기쁨’ 등을 읽으면, 저절로 시 속 에너지를 나눠받을 수 있다. 그 덕분에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한국 시 시상은 물론 스웨덴, 마케도니아 세계문학 포럼 등지에서도 숱한 상을 받았다.

문정희 시인이 읊은 시는 영어와 독일어,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알바니아어와 일본어 등으로 옮겨져 해외 독자를 찾았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 외국어 시집이 어떤 느낌으로 옮겨졌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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