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인류가 서로에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다. AI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은 AI로 더 발전한다. 두 존재 간 ‘공(共)진화’로 발전에 속도가 붙는다.

공진화는 하나의 생물 집단의 진화가 다른 생물 집단에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일컫는 생물학 개념이다. 찰스 다윈의 명저 '종의 기원'에서 소개됐다. 여러 집단이 영향을 주며 발전하는 현상을 빗대는 용어로 경제학, 경영학에서도 쓰이며 최근에는 AI 등 컴퓨터공학 분야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16일 AI 전문가 등에 따르면, 2016년 알파고 쇼크(구글의 바둑 전문 AI 알파고와 천재기사 이세돌 9단간 바둑 시합에서 알파고가 승리한 것을 일컫는 이벤트)를 시작으로 AI와 인류 간 공진화가 꾸준히 이어진다. AI는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인류는 AI를 더욱 발전시킨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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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다른 IT 기술과 달리 인간과 직접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진화한다. 인류는 AI로부터 새로운 가능성을 받고, AI는 발전한 인류가 제공하는 학습 데이터를 다시 배워 더 발전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둑이다. 2016년 AI 알파고에게의 패배는 바둑계에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를 연습 상대로 활용하며 새로운 기풍 찾기에 열 올리고 있다. 어린 바둑 기사가 AI로부터 배운 전략으로 한동안 정체된 바둑계에 활력을 불러 일으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바둑 선수들이 곧잘 AI처럼 둔다"며 "여기에 선수들만의 특색이 더해지며 새로운 전략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알파고도 발전했다. 알파고 개발사 딥마인드는 바둑보다 복잡한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 대전 AI ‘알파스타’를 선보였고, 최근에는 경기 규칙을 스스로 배워 승리하는 전략을 준비하는 AI ‘뮤제로’를 공개했다.

한국 게이머는 2021년 초 AI를 상대로 한 가상 공중전에서 이긴 것도 비슷한 사례 중 하나다. 헤론시스템즈가 개발한 AI는 2020년 가상공중전으로 경기를 펼친 미국 공군에 크게 이기며 큰 화제가 됐다. 당시 AI는 초근접 비행, 지그재그 비행 등 실제 파일럿이 수행하기 힘든 이론적인 전략을 수행하며 승리했다. 미국 공군 관계자는 "무인 시스템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맛봤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 게이머는 실제 파일럿과는 다른 전략으로 승리나 다름없는 분전을 펼쳤다. 헤론시스템즈의 AI는 실제 파일럿의 움직임을 학습해, 한국 게이머의 전략을 파훼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경기 이후 헤론시스템즈 관계자는 "한국 게이머의 데이터를 학습해 더 발전한 AI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AI가 발전함에 따라 공진화는 더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다. 에드워드 애시퍼드 리 UC버클리 교수( 컴퓨터공학과)는 자신의 저서 ‘공진화-인류와 기계의 설킨 미래’를 통해 "인류는 기계가 다른 기계를 만드는 과정을 벗어나기 위해 AI, 머신러닝 등 기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두 존재 중 하나가 앞서는 것이 아닌 지속가능한 공진화를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AI 공진화 특성을 ‘로봇’에 응용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1월 도전적인 연구를 지원하는 ‘문샷 프로젝트’로 2050년까지 달성할 6가지 목표를 공개했다. 이 중 인간과 공생하는 AI로봇 개발 프로젝트에는 AI와 로봇을 서로 공진화해 발전할 수 있는 개념을 적용했다.

공진화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AI가 빠르게 발전할 경우 인류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창배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인류와 AI가 공진화를 통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며 "특히 AI기술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만큼 AI 기초를 다지는 지금이야말로 AI윤리가 더 필요한 상황"고 말했다.

송주상 기자 sjs@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