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떨어진 세계 중앙은행 ‘CBDC 검토’
분위기 바뀐 美 "CBDC 정책적 우선순위 높아"
여전히 공격적인 中 "국내외 결제 다 잡겠다"
시험 유통 나서는 韓 "사전준비 꼼꼼, 발행은 신중"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을 결제수단 등으로 도입하면서 세계 중앙은행이 바빠졌다. 가상자산 기반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면서다. 중앙은행들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중앙은행이 분산원장기술을 활용해 전자 형태로 발행하는 화폐)’ 발행 검토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신(新)화폐 전쟁에서 누가 주도권을 가져갈지 관심이 쏠린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에 이어 미국과 한국도 CBDC 발행을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실험 차원’이라며 선을 긋던 지난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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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달러 띄우기 나선 美 "올해 공개"

분위기가 가장 많이 변한 곳은 미국이다. ‘미국 달러 패권이 종말을 맞을 일은 없지만, 연구는 지속하겠다’던 지난해와 달리 최근에는 디지털 달러 띄우기에 나섰다. CBDC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중국과 화폐 전쟁이 촉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선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한 컨퍼런스에서 "많은 미국인은 간편결제 시스템과 은행 계좌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며 "디지털 달러는 기존보다 빠르고, 안전하고, 저렴한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검토하는 것은 타당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옐런 재무장관의 발언을 거들었다. 그는 최근 상·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디지털 달러 프로젝트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우선순위는 높다"며 "첫 번째 타자로 CBDC를 발행하는 국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디지털 화폐를 제대로 발행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디지털 달러를 올해 대중에 공개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파월 의장은 "올해는 디지털 달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라며 "올해 디지털 달러와 대중이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 밖에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국내외 결제 챙기는 中

CBDC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여전히 중국이다. 중국은 CBDC를 통해 내수 경기 활성화뿐 아니라 국제 결제로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를 이뤄내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선전과 쑤저우, 베이징 등에서 디지털 위안화 결제 실험을 진행해왔다. 추첨을 통해 당첨된 시민에게 디지털 위안화를 나눠주고, 온·오프라인에서 쓸 수 있도록 했다. 최근에는 쓰촨성 청두시에서 4000만위안(68억7600만원) 규모의 디지털 위안화 실험을 개시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맞춰 발행한다는 목표를 가진 만큼, 앞으로도 내수 경기 활성화 가능성 여부를 체크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국제 결제까지 넘본다. 미국 달러화 중심인 기존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 위안화 비중을 높이겠다는 심산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일부 국가와 파트너십을 맺고 디지털 위안화 국제 결제 테스트에 나서기도 했다. 예컨대 중국은 지난해 홍콩금융관리국과 디지털 위안화 활용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홍콩,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과 손잡고 국제 결제에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CBDC를 활용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국제 무역 결제와 금융 거래 등에서 CBDC를 활용해 사용성과 분산원장기술의 잠재력을 테스트한다. 국제 결제망에 분산원장기술을 적용해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도 함께 확인한다.

韓 준비 박차 ‘발행에는 신중’

우리나라도 CBDC 전쟁에 빠질 수 없다는 입장을 연일 내비치고 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최근 청와대 업무 보고에서 CBDC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청와대에서 CBDC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실장은 "수천 년간 이어진 지급 결제 체계가 바뀌고 있다"며 "최근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한은 총재를 비롯해 금융당국 수장들이 모여 논의한 주제도 CBDC다. 대체적인 지급 결제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준비는 철저히 하되, 발행까지는 신중하게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빨리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입장을 신중히 했다.

이 총재는 중국이 앞서나가고 있지만, 정작 도입까지는 신중하게 접근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초’에 대한 위험부담때문이다. 그는 "한국은행도 CBDC 발행을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기술·운영·제도적 기반 등을 빈틈없이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 한국은 올해 CBDC 시험 유통에 나선다. 한국은행이 발행과 환수를 맡고, 유통은 민간이 담당하는 실제 현금 유통 방식의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