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금소법에 은행권 AI 서비스 '중단'

입력 2021.04.06 06:00

은행권이 비대면 상품 판매와 인공지능(AI) 서비스 일부를 중단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이 이유다. 관련업계는 금융 소비자 권리를 강화하겠다고 만든 금소법이 오히려 막대한 소비자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이미 예견된 혼란이라고 입을 모은다.

은행 업무를 보는 소비자 이미지 / 아이클릭아트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 은행들이 키오스크·무인단말기를 통한 비대면 상품 판매와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중단했다. 3월 25일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이 이유다.

금소법은 금융상품 판매회사의 의무 확대가 골자다. 주요 내용은 ▲기능별 규제 체계로 전환 ▲6대 판매 원칙의 확대 적용 ▲금융소비자의 청약철회권과 위법계약해지권 보장 ▲분쟁 조정 절차의 실효성 확보 ▲징벌적 과징금을 통한 사후 제재 강화 ▲금융교육의 법제화 등이다.

시중 은행들은 금소법 준수를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대면 금융 상품을 중단했다. 금소법 위반 1호가 되지 않기 위한 은행사들의 조치이자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KB국민은행의 스마트 텔러 머신 서비스와 하나은행의 AI 로보어드바이즈 서비스 ‘하이로보’의 맞춤형 펀드 추천 기능 중단이 대표적이다.

스마트 ATM을 통한 입출금 통장 발급 업무도 중단됐다. 금소법에 따르면 입출금 통장을 신규 발급할 때 은행은 소비자에 상품설명서와 약관 등 서류를 교부해야 한다. 하지만 스마트 ATM을 통해 발급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은행들은 해당 기능을 추가할 때까지 서비스를 일시 중단한 상태다.

준비 부족에도 법안 강행…예견된 ‘혼란’

업계 관계자들은 금소법에 대비한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감독규정이 모호하고 세부규칙도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혼란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소법은 지난해 통과됐지만 시행령은 법 시행 일주일 전, 시행세칙은 하루 전에 나왔다. 이미 혼란은 어느정도 예상된 상황이다.

설명 의무 강화로 인해 크게 떨어진 업무 효율도 문제다. 상품 약관 등을 녹취까지 하면서 진행하다가 비행기라도 지나가면 다시 설명을 진행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상품 가입 하나에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이유다.

금융당국은 ‘설명서를 빠짐없이 읽으란 의미가 아니고, 소비자가 설명이 필요 없다는 의사를 표시한 항목은 제외해도 된다’고 안내했다는 입장이지만, 최소한의 선이 어느 정도인지도 정해지지 않아 혼란은 여전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업계와 학계가 금융소비자보호법 준비부족과 여러 문제를 이유로 검토를 거쳐 최소 6개월 이후 시행을 주장했지만 정부가 법안 시행을 강행했다"며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책이라기보다는 금융 당국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금융 기관에 시간과 비용을 부담하기 위한 규제안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것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융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하 금융당국과 기관은 여러 논의 채널을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비자 보호는 금융발전을 위해 중요하지만, 금융 발전의 기본 원칙은 소비자와 금융사의 자율적 계약 존중이다"라며 "금소법에 따르면 청약 철회 등으로 현장에서 다툼의 여지가 많아진다. 소비자를 보호해주지도 못하면서 분쟁만 늘어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 위배를 피하기 위한 보수적 선택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금융위, 절차 효율적 이행 못한 금융업계에 유감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절차를 효율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금융업계를 질책하고 유감을 표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금소법 조기 안착을 위한 증권사 CEO 간담회에서 "향후 분쟁의 부담으로 모든 사항을 기계적으로 설명하고 녹취하는 책임 회피성 행태는 금소법 취지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금융투자상품의 충분한 설명과 이해 없이 시간에 쫓겨 금융상품을 선택하게 한 것은 소비자 선택권을 사실상 사장한 것이다"라며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 핵심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절차를 효율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법규 준수에 애로가 없도록 일부 사항에 대해 업계와 함께 세부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6개월 계도기간 내에 시스템 정비, 현장의 세부준비가 완료될 수 있도록 더욱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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