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깊어진 감정의 골을 뒤로 하고 어색한 맞손을 잡았다. 양사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은 장기화 부담과 미국 및 우리 정부의 합의 요구에 2년만에 막을 내렸다. 자사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집단 이직하며 기술이 탈취됐다고 본 LG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 침해 분쟁을 제기한 지 713일 만이다.

양사는 11일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에 현재가치 기준 총액 2조원(현금 1조원+로열티 1조원)을 합의된 방법에 따라 지급한다고 이날 밝혔다. 또 관련한 국내외 쟁송을 모두 취하하고, 향후 10년간 추가 쟁송도 하지 않기로 했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처음으로 영업비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2019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LG화학(現 LG에너지솔루션)은 2017~2019년 직원 100명쯤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는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유출했다면서 ITC와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정상적인 경력사원 채용을 통해 LG 출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이직했다며 영업비밀 침해 주장을 일관되게 부인했다. SK는 "정상적인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했으며, LG 출신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옮겨왔다"고 반박했다.

양사는 국내외에서 확전을 이어갔다. LG화학은 2019년 5월 SK이노베이션을 경찰에 고소했고, SK이노베이션은 6월 서울중앙지법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양사는 그해 9월 ITC에서 서로를 상대로 특허침해 사건을 제기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직접 만나 접점을 모색하기도 했으나 입장 차만 확인 후 무산됐다.

영업비밀 침해 소송은 2020년 2월 LG에너지솔루션이 예비승소한데 이어 2021년 2월 최종승소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에 대해 ITC로부터 '제한적 수입금지 10년' 조치가 내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이 SK이노베이션에 대해 제기했던 특허침해소송 관련해서는 SK이노베이션이 예비결정서 승소 결정을 받았다. 8월 최종 결정이 예정된 상태였다. 하지만 양사가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해 대승적으로 합의키로 결정하면서 부속 소송들에 대해서도 소송이 취하한다.

ITC 최종결정 후 SK이노베이션은 "수입금지 조치가 무효화하지 않으면 미국 사업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배수진을 쳤다. 김준 사장과 김종훈 이사회 의장이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총력을 기울였다.

LG에너지솔루션도 대규모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SK의 거부권 주장을 일축하며 방어전을 펼쳤다.

양사는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며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고, 이는 미국 산업계와 언론에서도 큰 이슈였다.

이 가운데 ITC가 4월 초 특허 침해 소송 예비판결에서 LG가 아닌 SK의 손을 들어주면서 양사의 분쟁이 장기전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식재산권 보호를 강조한 터라 거부권까지는 행사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자국 중심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 구축 등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SK가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철수하는 리스크는 부담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었다.

결국 미 정부가 물밑에서 양사에 합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도 정세균 국무총리가 재차 합의를 종용한 바 있다.

그동안 LG는 배상금 3조원 이상을, SK는 1조원 미만을 제시하며 접점을 찾지 못했다. SK는 영업비밀 침해 혐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거부권이 불발되더라도 항소를 통해 분쟁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LG는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승리했지만 전기차 화재 관련 악재를 맞닥뜨려 협상 테이블에서 완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또 1일 ITC가 특허 침해 사건에서 SK의 손을 들어주는 예비 결정을 내리면서 반격당할 가능성도 생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행정부가 LG, SK와 꾸준히 접촉하며 중재한 끝에 주말 사이 전격 합의가 타결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합의로 양사의 배터리 분쟁은 마무리됐다. 영업비밀 침해의 파생 분쟁인 특허 침해 소송도 이날 합의에 따라 취하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